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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 23

[동문][동행한대] 김동립 교수, 기부는 후배에 대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2019년 겨울호)

▲ 김동립(기계공학 97) 기계공학부 교수 기부는 후배에 대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김동립(기계공학 97) 기계공학부 교수 기계공학부의 독립건물이 될 기계관 설립을 위해 기계공학부 김동립 교수도 마음을 보탰다. 김동립 교수는 기계관 건립기금으로 지난 해 9월 1억 원의 기부금을 약정하면서 캠페인에 동참했다. 한양대가 있었기에 현재의 자신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김동립 교수는 자신이 받은 혜택과 사랑을 후배들에게 돌려주어야겠다는 마음을 늘 갖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기부 는 더할 나위 없이 큰 만족감을 준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저는 한양대로부터 받은 자부심과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기부라고 생각합니다. 기부는 금액의 크기를 떠나서 시작하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사랑의 실천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Q1. 김동립 교수님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기계관 건립기금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기계관 건립을 위한 활동은 얼마만큼 진행이 되었나요? A1. 많은 동문분들이 건립기금 캠페인에 참여해주셔서 기계관은 현재 설계 진행 중입니다. 기계공학을 선도하는 교육과 연구의 메카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 기계공학부의 바람입니다. 동문회에서 기계공학부에 맞는 공간설계를 위한 큰틀은 정해졌고 현재 세부적인 사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Q2. 교수님께서 캠페인에 참여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어떻게 이런 큰 금액의 기부를 결심하게 되셨는지요? A2. 지난 해 한양대가 4차 산업혁명 혁신선도대학으로 지정되고 제가 단장으로 활동하면서 융합지식에 대한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꼈습니다. 지금은 오픈된 문제를 여러 가지 지식으로 해결하는 PBL(Problem-Based Learning)과 융합 교육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모여서 토의하고 협업하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해외 유수의 대학들도 모여서 문제를 해결하는 식의 연구와 교육을 해나가는 추세입니다. 한양대 기계공학부에도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동문회에서 기계관 건립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기부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Q3.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입장이기 때문에 기계관 건립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컸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어떤 부분이 가장 기대가 되시나요? A3. 지난 해 2월 종료된 기계공학부 특성화사업이 있습니다. 그때 설계교육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었는데 학생들이 좋아했습니다. 뭔가 만들고 고민하는 공간이 부족했던 차에 생겨서 지금도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기계공학부 친구들은 수업을 듣고 바로 집이나 도서관을 가는 게 아니라 학생들끼리 자발적으로 모여서 프로젝트를 해내기도 합니다. 저에게 찾아와 지도를 해달라고 먼저 제안을 하기도 하고요. 그 아이템으로 창업을 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기계공학부 학생들은 실체가 있는 것을 만들려는 욕구가 강합니다. 그런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 만들어져야 사회가 원하는 인재를 배출할 수 있습니다. 기계관이 그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Q4. 한양대 기계공학부를 졸업한 동문이신데, 재학 당시 학교로부터 받은 혜택이나 기억에 남는 도움이 있으셨나요? A4. 2005년도에 학부 졸업을 한 뒤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유학을 했습니다. 하루는 상담을 해주는 지도교수인 아카데미 어드바이저가 저와 상담 중에 저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습니다. 그러더니 “내 기억에 남는 우수한 학생 중 하나가 한양대 출신이었다”며 “너는 한양대를 나왔으니 앞으로 잘 할 것이다.”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 격려가 유학 시절 내내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스탠포드대학에서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제가 학부 때 잘 배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성장에는 한양대라는 기둥이 있었습니다. 자부심과 자신감을 심어준 한양대에 언젠가 제가 받은 도움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꾸준히 하고 있었습니다. Q5. 동문회 장학재단의 간사로도 활동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을 보면서도 기부에 대한 생각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A5. 장학재단 간사를 맡으면서 어려운 친구들의 사연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학비를 벌기 위해 밤에 세차 아르바이트를 하던 친구가 장학금을 받으면서 “이제는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했을 때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후배들을 보면 뭔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래서 교수가 되고 얼마 안되어 월 2만 원씩 100만 원 정도의 금액을 기부한 적이 있습니다. 적은 금액이었지만 우리 후배들을 위해 쓰일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소액을 썼는데도 마음이 커지는 느낌이었습니다. Q6. 기부도 여러 선택 중 하나입니다. 기부를 선택하신 뒤 현재 어떤 마음이신지 궁금합니다. A6. 저에게 기부는 그 자체로 뿌듯한 선택이었습니다.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뭔가 돌려줄 수 있다는 만족감이 저를 마음 편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한양대로부터 받은 자부심과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기부라고 생각합니다. 기부는 금액의 크기를 떠나서 시작하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사랑의 실천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2020-01 23

[동문][동행한대] 김장순 동문, 늘 생각해온 나눔이 후배들에게 빛이 되길 바라며 (2019년 겨울호)

▲ 김장순(국어국문학 79) 지아이엠시스템 대표 늘 생각해온 나눔, 후배들에게 빛이 되길 김장순(국어국문학 79) 지아이엠시스템 대표 김장순 대표는 1984년 제1기 교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2년 간 유학생활을 했다. 학비가 절실했던 시기에 한양대에서 받은 장학금은 학업을 이어나가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그때 받은 도움을 내내 잊지 않았던 그는 2010년부터 최근까지 세 번에 걸쳐 국어국문학과에 1억 원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앞으로도 힘들게 학업을 해나가는 후배들에게 조그만 빛이라도 되어주고 싶다는 김장순 대표와 마음 훈훈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한양대 국어국문학과에서 국어학을 전공하는 훌륭한 후배들이 많아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Q1. 국어국문학과에 총 1억 원의 장학금을 기부하셨습니다. 학과를 위해 이 같은 기부를 결심하신 계기가 무엇인지요? A1. 저는 11남매 가운데 막내인데, 저희 집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스스로 학비를 책임져야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대학원도 장학조교 생활을 하면서 학비를 벌어서 다녔는데, 마침 교비유학생이라는 제도가 생겨서 신청을 했습니다. 다행히 성적이 좋아서 첫 교비유학생으로 뽑힐 수 있었습니다. 한양대는 국내에서 최초로 교비유학생을 모집한 학교입니다. 그 장학금이 없었다면 유학도 어려웠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한양대에서 받은 도움을 언젠가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기왕이면 국어국문학과 후배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고요. Q2. 대표님의 아버님께서는 조선어학회 사전편찬위원이자 언어학자인 무돌 김선기 선생이신데요. 1992년에는 한양대에 장서 5천여 권을 기증하시기도 했습니다. 이 역시 후배 사랑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A2. 대학원을 졸업한 후 전공과는 다른 분야인 LG화학에 입사를 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 언어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당시 결혼도 한 상태였고 아이도 키워야 하는 가장의 입장에서 어려운 면이 있었죠. 저의 선택에 후회는 없지만 국어국문학과라는 전공이 직업으로 이어 나가는 데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는 것이 늘 안타까웠어요. 특히 언어학은 더욱 그렇고요. 한양대 중앙도서관에 아버지 책을 기부해 ‘무돌문고’라고 별도의 서고를 만든 것도 우리나라의 국어학발전을 위함과 동시에 한양대 후배들이 언어학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위 하는 바람에서였습니다. Q3. 졸업하시고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학교와 후배들에 대한 관심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간 한양대와는 어떻게 인연을 유지해 오셨는지요? A3. 국문과 교수님들 가운데 정민 교수와 이도흠 교수가 79학번 동기라 정기적으로 만나는 벗입니다. 제 아내 역시 79학번 동기고요. 만나서 학교 이야기를 자주 하지는 않지만 한양대로 뭉친 인연들이기 때문에 학교에 대한 마음도 각별할 수밖에 없지요. Q4. 국어국문학과의 여러 학생들이 대표님이 기부하신 장학금의 혜택을 받았습니다. 혹시 발전기금을 기부하시면서 장학금이 어떤 학생에게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셨을까요? A4. 지난 2019년 12월 장학금을 받은 후배들과 간담회 자리가 있었습니다. 장학생 여덟 명을 만났는데, 그 가운데 몸이 불편해서 어머니가 등하교를 시킨다는 학생이 기억이 납니다. 제 기부가 학생의 노력과 어머님의 수고에 조금이라도 힘이 된다면 참 좋은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언어학을 전공하는 후배들에게 장학금의 기회가 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듭니다. 현대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대부분이고 언어학을 하는 친구는 점점 줄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Q5. 대표님께서 한양대 후배들을 위해 기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데 영향을 주신 분이 있을까요? A5. 무돌문고를 만들 때 故 이종은 교수님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종은 교수님은 제 은사이시자, 저희 아버지의 제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2007년 아버님의 탄신 100주년 기념식도 아버님이 몸 담으셨던 서울대나 연세대가 아닌 이곳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에서 개최했습니다. 무엇보다 한양대 국어국문학과에서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을 심도 있는 언어학자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가슴 깊숙이 박혀 있습니다. Q6. 대표님에게 기부란 어떤 의미일까요? 그리고 앞으로 기부에 대해 계획하시는 바가 있으신지요. A6. 살아가면서 ‘사랑의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느낀 순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기부는 평생을 살며 꾸준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양대에 기부를 하기 전에도 다니는 교회에 계속 기부를 해왔고요. 회사를 운영하면서 지난 3년간 회사 경상이익의 10%를 무조건 기부하는 것으로 스스로 약속했었고, 결국 실천했습니다. 앞으로도 회사의 이익을 꾸준히 상승시켜 더욱 많은 기부를 하는 것이 제 꿈이자 소망입니다.

2020-01 23

[동문][동행한대] 故 정순애 동문, 한양에 대한 사랑을 기부로 새기다. (2019년 겨울호)

▲ 故 정순애 동문 (간호학 74) 한양에 대한 사랑, 기부로 깊이 새기다 故 정순애 (간호학 74)동문 2019년 6월 13일, 故 정순애 한양대병원 간호사가 생전에 남긴 유언에 따라 한양대학교와 한양대학교병원에 각각 2억 원의 발전기금 전달식이 진행됐다. 1978년부터 2015년 퇴직할 때까지 37년 동안 한양대학교병원에 몸 담았던 故 정순애 간호사는 암 투병 말기에 자신의 유산이 모교와 후배들을 위해 쓰이길 바란다는 뜻을 남겼다. 한양대 간호학과에서 함께 공 부하고, 많은 시간을 한양대병원에서 함께 근무한 최정순(간호학 73) 동문과 박경복(간호 학 73) 동문을 만나 故 정순애 간호사의 한양대와 한양대병원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고인에게 한양대와 한양대병원은 자신의 전부나 다름없는 곳이었어요. 마지막까지 사랑을 실천하고 간 고인을 많은 분들이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성실하고 반듯하게 일했던 간호사 시절 故 정순애 동문은 1974년 한양대 간호학과에 입학한 후 졸업과 함께 바로 한양대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20대의 시작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40여 년을 한양대와 함께 지내온 셈이다. 몸이 편찮으신 어머니를 살뜰하게 살피던 효심은 간호사라는 직업적 자세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환자 한 명 한 명을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을 최정순 동문은 아직도 기억한다. “간호사로 근무하는 동안, 정말 성실했어요. 옆에서도 누구나 인정할 만큼 근면하게 일했죠. 환자들 사이에서도 평이 좋았어요. 자기 자리를 떠난 적이 없을 만큼 반듯하게 일하던 사람이라 어디가 아프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2011년에 유방암이 발병하자 故 정순애 동문은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고 1년 만에 복직을 했다. 동기들도 차츰 퇴직을 준비하던 시기라, 이때 같이 그만두고 쉬면 어떠냐는 제안을 했는데도 본인이 거부했다. 자신은 병원에서 아직 일을 더 해야 한다고 답했다. “유방암 말기였으니까 치료는 했다고 하지만 몸 상태가 예전 같을 수가 없죠. 걱정이 되어서 저희가 퇴직을 권유했는데도 듣지 않았어요. 그만큼 한양대병원과 환자들에 대한 소명의식이 확고했어요.” 2015년 2월 퇴직을 하고 난 뒤, 故 정순애 동문은 할 일을 마쳤다는 듯 11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 전에 모아온 재산을 정리하면서 한양대와 한양대병원에 큰 금액의 기부를 결심한 것은 평생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고 가장 자신답게 살아온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몸에 밴 검소함과 후배에 대한 지극한 사랑 故 정순애 동문은 외투 한 벌로 겨울을 날 정도로 평소 검소하게 생활해왔다. 박경복 동문은 한 번도 고인이 허투루 돈을 쓴 것을 본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기부금을 결심할 때 모아둔 재산을 보고 한 번 더 놀랐다고 말했다. “함께 살던 어머니가 편찮으시니 병원과 집만 오가는 생활을 했어요. 그래도 미혼으로 평생을 살았던 사람이 그렇게 큰 금액을 모아뒀을 지는 몰랐어요. 저희도 나중에 알고 우리가 알고 있던 이상으로 참 착실하게 살았구나하고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간호부 팀장으로 근무하면서도 성실한 태도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환자를 대할 때 차등을 두지 않고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이런 바른 모습은 후배에게도 귀감이 되었다. 유독 따르는 후배가 많았던 것은 사람을 챙기는 것에도 마음을 잘 썼기 때문이었다. “선배들에게도 깍듯했지만 후배들에게 마음을 많이 썼어요. 후배들이 뭐가 부족하고 뭐가 필요한지를 잘 알아챌 정도로 세심하게 살폈어요. 선배로서 자신이 뭘 도와줘야 하는지를 제때제때 아는 선배였죠. 그래서 후배들과 관계가 좋을 수밖에 없었어요.” 후배와 환자를 향한 사랑의 실천 최정순 동문과 박경복 동문은 故 정순애 동문에게 간호사라는 직업은 천직이었고, 한양대병원이 집과 같은 곳이었다고 기억한다. “대학을 들어왔지만 고등학교 다닐 때처럼 다른 데 한 눈 파는 일 없이 수업을 들었어요. 졸업하자마자 다른 데를 볼 것도 없이 한양대병원으로 취업을 했고요. 이런 생활을 하면서 동기들끼리 서로 애착도 강하고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남달랐죠. 고인도 한양대병원이 최고의 직장이라고 자주 말했어요.” 한양대와 한양대병원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깊었기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옆에 있었던 최정순 동문과 박경복 동문에게 故 정순애 동문은 후배와 병원을 위해 기부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직접 전했다. 한양대에는 간호학과 발전과 후배들을 위해 쓰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한양대병원에는 암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병동 건립에 힘을 보탰으면 한다는 뜻을 밝혔다. “고인에게 한양대와 한양대병원은 자신의 전부나 다름없는 곳이었어요. 자신의 기부금이 후배들과 환자들을 위해 쓰이길 원했는데 그 뜻이 잘 전달되어 저희로서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마지막까지 사랑을 실천하고 간 고인을 많은 분들이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러한 故 정순애 동문의 뜻을 기리기 위해 한양대에서는 현재 한창 공사 중인 간호학부 미래교육관에 ‘정순애 홀’을 조성할 예정이다. 평생 사랑을 실천해온 故 정순애 동문은 앞으로도 한양대와 한양대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