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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08 기획 > 오피니언 >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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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선후기 조선풍 한시 연구

'조선풍'은 주체성과 새로움에 대한 의식적 자각

박수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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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r3MM

내용

 바야흐로 실존이 방황하는 시대다. 이미지가 현존을 대신하며 규범은 그 쓸모를 잃고 모든 것은 해체되어 가고 있다. 이제 실재와 가상, 원본과 복사, 진짜와 가짜 사이의 구분은 점차 소멸해가고 있다. 이를 포스트모던 증후군이라 했던가. 이제 현대인은 '나는 누구인가'하는 자기 정체성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그런데 컴퓨터가 존재하지도 않던 이전 시기, 동일한 공간에서 '자기 정체성'의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한 현상이 있었다. 바로 '조선풍(朝鮮風)', 곧 '조선의 노래'이다. 이 시점에서 새삼 수세기 전의 '조선풍'이 떠오르는 것은 오늘날과 같은 정체성 혼돈의 시대에 '조선풍' 속에 담긴 정신이 하나의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정선의 『조선후기 조선풍 한시 연구』(한양대학교 출판부, 2002. 9)는 딱딱한 논문체의 형식을 지녔음에도 매우 현실감 있는 제목으로 다가온다.

 

 '조선풍'은 비단 한시 방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조선후기 예술사 전반에 걸쳐 나타난 현상이다. 그간 이 용어에 대해 많은 연구자들이 관심을 갖고 접근하였으나 그 실상에 대한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정리 없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채로 이루어져 온 감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풍'이란 용어가 이론적 틀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지식인들의 잠재적 의식 속에서 면면히 전개되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조선후기 한시에 나타난 '조선풍'의 구체적 실체와 범주를 실제 작품의 양상을 통해 살펴보고 그 특질마저 종합하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에 따르면 '조선풍'이란 주체의 자각을 바탕으로 기존의 사고 틀을 벗어나 우리 것의 가치를 새롭게 음미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조선후기 문화 현상이다. 저자는 이러한 조선풍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으로 모화의식(慕華意識)의 탈피와 주체적 각성, 심미관의 변모를 들고 있다. 곧 나는 남과 다르다는 주체적 자각은 중화 중심의 사고를 수정하게 하여 우리 것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곧 '나는 조선사람이니 조선시를 쓰겠다'는 인식의 전환이다. 그렇다면 조선풍의 지향처는 어디에 있는가. 저자는 고금의 시대인식, 주체적 언어인식, 확장된 소재인식이라 말한다. 옛날이란 개념도 당시에는 지금이었다는 의식 전환을 바탕으로 '지금 여기'라는 우리 조선의 가치를 우리의 언어로 노래하려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조선풍은 결코 일과적 현상이 아니었음을 강조한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주변적 가치가 중심적 가치로 변모하였고 문학사는 천편일률의 투식에서 벗어나 생동감을 획득하였음을 밝혀낸다. 그러면서도 조선풍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론적이고 사상적인 철저함보다는 시대적 소명과 의욕만 앞선 나머지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는 토양을 만들기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18 19세기 실학시대의 문예사적 흐름인 조선풍은 나는 조선인이라는 자각, 현재라는 시간, 내가 발딛고 있는 조선이라는 공간이 어우러진 사유체계이다. 비록 저자는 한시라는 특정 장르를 대상으로 조선풍의 양상을 종합하였지만 그 결과는 문화 현상으로서의 조선풍 실체를 깨닫기에 부족함이 없다. 구체적 이론이 드러나지 않던 대상에서 그 실체를 밝혀내기 위해 들여야 했던 노고도 작게 평가될 수는 없을 것이다.

 

 주체성과 새로움을 바탕으로 하는 조선풍의 정신은 정체성 혼돈이라는 현상에 직면한 오늘날 매우 유용하다고 본다. 진짜와 가짜가 모호해질수록, 내가 타인의 시선에 지배될수록, 환상공간이 현실을 대치할수록 '지금-여기'에서 참된 나, 참된 우리 것을 되찾으려는 노력은 매우 절실하다. 조선풍의 정신을 '저기-그곳'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다시금 '지금-여기'로 끌어올리려는 시도가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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