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46건
뉴스 리스트
게시판 리스트 컨텐츠
2017-04 04

[오피니언][짧은 글 긴 이야기] 캠퍼스와 함께한 나의 성장과 발전

한양플라자 3층 학생 식당이 리모델링됐다. 아무래도 많이 낡긴 했었다. 다 떨어져가는 벽지와 오래된 의자, 탁자들도 칙칙한 분위기에 한몫했지만 이래저래 다른 학생 식당들이나 시설들이 세련된 모습으로 변하면서 상대적으로 누추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1월과 2월 두 달 동안의 공사를 거쳐 다시 문을 열었는데, 꽤나 그럴싸한 모습이다. 글. 양재영(사회학과 11) / 그림. 안우정 6년 전 교정을 떠올리며 ‘여기도 바뀌었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처음 입학했던 2011년의 교정과 지금의 그것은 6년 터울일 뿐인데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외형적으로 많이 바뀌었다. 노천극장 앞의 세련된 미래자동차공학관, 다듬어진 한양둘레길, 곳곳에 새로 생긴 카페들은 내 신입생 시절에는 없던 것들이다. 내부적으로는 어떤가. 불과 6년 전이지만 그 시절 생활과학대는 온수는커녕 한 층에 한 개의 화장실도 없었다고 한다. 공간이 너무 부족해 화장실로 쓰던 공간을 과방으로 개조해서 사용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또한 이전에는 없었던 수많은 단체들이 생겨났으며 시스템도 많이 개선됐다. 그렇게 묵묵히 내가 몸담은 학교의 변화를 천천히 떠올려보고 있자니 문득 나의 성장과 변화는 나의 모교와 함께 자란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대를 시작하며 한양대에 입학했고 그 이후 지금까지 보냈던 많은 시간들이 학교와 관련된 것이었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제 4학년, 취업 준비에 매달려 하루하루 나 자신의 발전에만 매몰되어 있었기에 나에게는 이런 생각들이 꽤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항상 나 자신의 발전을 위해 하루하루 찾던 이 공간도 나와 함께 변화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떤 씨앗도 혼자 발아할 수 없다 취업 준비생이란 타이틀이 이제 나를 부른다고 느낄 즈음의 학생들의 시야란 상당히 좁아지기 마련이다. 남을 배려할 마음의 여유를 챙기기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이 너무나 각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는 이기적인 마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어떤 씨앗도 자기 혼자의 힘으로 발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씨앗이 온전히 나무로 자라기 위해서는 자신을 품어줄 비옥한 토양과 적절한 영양분 그리고 옆에서 성장을 함께할 다른 씨앗이 필요한 법이다. 이 교정은 나와 많은 것을 함께하는 비옥한 토양 같은 것이다. 때론 전문적인 지식을 쌓아주는 선생님으로, 주린 배를 채워주는 식당으로, 흥에 겨운 밤을 보내며 아침을 지새웠던 친구로 함께해왔다. 항상 나를 품어주고 길러줬다는 뜻이다. 또한 나와 함께 자랄 많은 친구들을 만나게 해준 것도 우리 학교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공부하고 고충을 토로할 수 있는 인연들을 만난 것도 바로 학교가 우리에게 제공해준 것들이다. 나의 뿌리를 기억하는 일 추수의 때, 나라는 사람이 황금빛으로 익을 때 나는 이 캠퍼스를 떠날 것이다. 사회에서 원하는 인재로 알맞게 익어서 어딘가에서 요긴하게 사용될 터이다. 그때가 되면 천천히 변화하는 교정의 모습을 더 이상 이 자리에서 지켜볼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학교에 영원히 남을 수는 없을지라도 중요한 것은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나의 뿌리를 기억하는 일이다. 내가 성장했던 고향을 떠올리고 나와 함께 공부한 친구들을 기억하며 사는 것은 곧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 자리에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감사를 갖는 것이다. 비록 아직은 미래에 대한 걱정에 잠 못 이루는 취업 준비생일지라도, 이런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나와 함께 성장하는 많은 존재들을 떠올리며 나는 오늘도 도서관으로 향한다. 사랑한대 2017년 3-4월호 이북 보기

2017-03 31

[오피니언][건강한대] 건강한 잇몸, 올바른 치아 관리

충치와 풍치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올바른 칫솔질을 배워 깨끗한 구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프라그란 치아에 끈적끈적하게 붙어 있는 거의 무색의 얇은 막으로, 이 프라그가 충치와 잇몸병의 주원인이다. 글. 황경균 교수(한양대학교병원 치과) / 그림. 안우정 충치와 풍치 예방은 프라그 제거부터 칫솔질은 마구잡이로 닦아서 치아에 광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음식물 찌꺼기와 프라그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칫솔질은 앞뒤가 아닌 위아래로 구석구석 쓸어내듯이 닦아야 한다. 우선 칫솔을 빗자루처럼 잇몸에서 치아 쪽으로 쓸어내듯이 움직여 치아를 2~3개씩 닦는다. 또 한 부위를 10회 정도 쓸어내리고, 빠진 부위 없이 구석구석 순서를 정해 닦는다. 어금니 안쪽을 닦을 때는 칫솔 끝부분으로 1~2개씩 나눠서 닦는다. 이 방법이 익숙하지 않을 때는 거울을 보고 부위를 확인하며 닦는다. 특히 잇몸이 나쁜 사람들은 칫솔이 치아 사이로 충분히 들어가도록 움직여 치아 사이에 음식물 찌꺼기가 남아 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음식을 먹은 후 3분이 지나면 치아 표면에 세균막인 프라그가 형성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식후 3분 이내에, 하루 세 번 이상, 3분 정도 칫솔질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어린아이의 경우 간식 먹는 버릇을 고쳐야 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음식을 먹이지 않는 것이 좋다. 또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등 어린이 치아에 치명적인 음식은 먹은 후에 반드시 물로 헹구는 습관을 길러 주는 것이 중요하다. 칫솔은 자연모로 된 것보다 인공모로 이루어진 것이 좋으며, 모든 치아에 접근하기 편한 크기의 것을 선택한다. 칫솔질 외의 보조 수단으로 치아 사이의 음식물 찌꺼기를 제거해 줄 수 있는 치간칫솔이나 치실을 사용함으로써 세균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없앨 수 있다. 치아 건강 도우미 ‘불소’를 이용한 충치 예방 구강 건강에 좋은 음식물을 잘 섭취하고 해가 되는 음식의 섭취를 줄이는 것도 충치 예방에 도움이 된다. 당분은 충치를 잘 생기게 한다. 따라서 당분이 다량 함유된 비스킷, 케이크, 초콜릿, 양갱, 도넛, 설탕, 빵, 밀가루 음식 등의 섭취를 줄인다. 이런 식품을 먹은 후에는 즉시 칫솔질을 하는 것이 좋다. 반면 호두, 잣, 땅콩과 같은 지방질이나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및 어패류 등 단백질이 많은 음식은 자주 섭취하는 것이 좋다. 또 채소나 과일을 많이 먹으면 치아 면을 씻어주는 자정 작용으로 충치를 예방할 수 있다. 충치 예방에 상당히 효과적인 방법으로 산에 대한 저항성을 높여 주는 불소 이용법이 있다. 불소란 충치를 예방할 수 있는 원소로 치아 건강의 핵심적 요소다. 불소는 세균에 의해 생기는 산에 잘 견디어 치아를 보호하고 치아 표면에 불소막을 형성해 초기에 충치를 일으키는 세균을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또 다른 방법은 치과에서 불소를 치아 면에 발라주는 불소도포법이 있는데, 약 40~70%의 충치 예방 효과가 있다. 치아의 틈새를 미리 메우는 치면열구전색법 충치 예방법으로 치아 틈새나 구멍을 미리 메워 주는 치면열구전색법이 있다. 어금니의 씹는 면은 음식물을 잘 부수고 갈 수 있게 거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의 깊고 가느다란 틈새와 작은 구멍들이 있는데 이곳에 음식물이나 프라그가 잘 낀다. 칫솔질로는 이 틈새에 낀 음식물이 제거되지 않아 충치가 생기기 쉽다. 이와 같은 틈새나 구멍을 플라스틱 계통의 레진으로 미리 메워 충치를 예방하는 방법이 치면열구전색법이다. 약 65~90%의 충치 예방 효과가 있는데, 치아를 인공적으로 갈아내지 않고 시행하는 것이 장점이다. 치면열구전색은 5세의 아동부터 영구치 어금니가 완전히 나오는 15세까지의 연령에서 시행된다. 충치의 발생률이 높거나 씹는 면의 틈새가 깊은 치아를 가진 이들에게 효과적이다. 건강한 치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구강 검사를 통해서 충치 및 풍치가 발생하기 전이나 초기에 치료해 병의 진행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구강 검사는 6개월 간격으로 정기적으로 하는 것을 권장한다. ▶알쏭달쏭 치아 건강 상식◀ 1 사탕은 무조건 충치를 일으킨다? 음식의 성분과 음식을 먹는 습관은 충치 발생에 중요한 요인이다. 음식에 함유된 설탕은 치면세균막의 내부에서 산을 제조할 뿐만 아니라 매우 끈끈한 당단백질을 만들어 세균막이 치면에 단단히 부착되도록 도와주므로 단 음식을 자주 먹는 습관은 충치 발생을 증가시킨다. 2 임신 중에는 치과 치료를 받으면 안 된다? 임신 시의 치과 치료는 안정기인 4~6개월에 받는 것이 좋다. 이를 제외한 임신 초기나 말기에는 심한 통증 완화에 필요한 치료나 스케일링 등의 치료 외에 약을 복용하는 치료는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무작정 통증을 참는 것보다 치과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임신 시 안전한 약을 복용하고 치료받는 것이 좋다. 3 전동칫솔이 잘 닦인다? 전동칫솔은 이를 닦는 동작을 적절히 조절할 수 없는 것이 단점이며, 과도한 압력으로 치경부 마모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충치 예방을 위해서는 칫솔 선택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잇솔질을 통한 구강 위생 관리가 더욱 중요하다. 4 구강세정제가 충치를 예방한다? 잇솔질 후 구강에 남아 있는 치면세균막의 제거와 일시적으로 구강 내 미생물의 양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잇솔질 후의 보조적인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옳다. 5 소금으로 닦으면 치아가 튼튼해진다? 큰 소금 입자가 치아를 마모시켜 시린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직접 소금으로 닦기보다는 잇솔질 후 소금물로 입 안을 헹구는 것이 좋다. 사랑한대 2017년 3-4월호 이북 보기

2017-03 31

[오피니언][타임머신] 아름다운 시간 속 추억의 편린들

몇 해 전 일이다. 한양대학교병원을 찾게 된 것은 대학 동창이 내게 전한 부고 때문이었다. 학교 다닐 때 시인이셨던 교수님의 부인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선약이 잡혀 있긴 했지만 약속을 취소하고 강변북로로 핸들을 꺾었다. 그런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만나게 될 친구들과 졸업 후 한 번도 찾지 않은 학교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했다. 이순임(소설가/㈜램프웨이 대표·국어국문학과 85) ▲1988년 팰리스호텔에서 열린 사은회 때의 모습(출처: 이순임 동문) 문득 떠오른 졸업식 날의 풍경 한양대역 근처에 이를 무렵, 문득 졸업식 날이 떠올랐다. 엄마는 새로 맞춘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셨고 은빛 스팽글이 달린 토트백을 드셨다. 그런데 전철 안은 사람들로 미어터졌고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인파에 밀려 엄마는 맨 아래 계단까지 어떻게 내려왔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지갑이 없어진 걸 알게 된 것은 우왕좌왕 식을 마치고 사진을 찍은 다음이었다. 엄마 안색은 순식간에 달라지셨다. 그제야 엄마는 계단 내리막에서 누군가 툭, 치고 지나간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부모님은 무슨 이유에선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진관에 들러 나란히 독사진을 찍으셨다. 그때 찍은 사진이 엄마의 영정사진이 됐고, 기일이 돌아올 때마다 나는 한복 입은 엄마를 보게 된다. 30년 전 소매치기를 당하고 마음이 상해 있던 엄마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은 역에서 곧바로 갈 수 있도록 학교까지 통로가 이어져 있다고 들었다. 그때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30년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다 나는 천천히 차의 속도를 낮추면서 교문을 찾아보았다. 둘이었던 교문이 언제 없어졌는지 하나만 남아 있었다. 정확하게 ▲ 2학년 때 협궤열차 앞에서 국문과 친구들과 추억을 남 겼다. (출처: 이순임 동문) 어느 쪽에 있었는지 구분이 안 됐다. 뒤이어 내 눈을 의심했다. 빼곡하게 들어선 학교의 신축 건물들이 하나둘 모습을 나타냈다. 나는 아예 차를 정차시키고 차창 문을 열어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옛날의 그 학교가 아닌 것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 하는 기분이 들었다. 1985년에 타임머신을 타고 간 2015년 미래에 대한 이야기. 불현듯 <백 투 더 퓨처 2>란 영화가 떠올랐다. 나 역시 85년도 새내기 대학 생활을 함께했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어언 30년의 시간을 영화처럼 거꾸로 돌리고 있었으니 맞추기라도 한 듯, 시간의 간극이 일치했다. 나는 이미 지난 시간 속에 묻혀 있었다. 촌스런 펌에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이었던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들을 만나면 어깨동무를 하고 겅중겅중 뛰어보다가 지치면 오래도록 포옹하고 싶었다. 그리고 아직도 심장이 뜨겁게 뛰는지 하하호호 웃고도 싶었다. 마음은 벌써 장례식장에 닿기도 전에 저만큼 앞서 가고 있었다. 과거의 한 순간으로 나를 이끈 힘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걷는 것을 유난히 싫어한다. 1985년 신입생 합격자 발표를 보기 위해 나는 정문에서부터 힘겹게 언덕을 올랐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는 합격자 명단이 대운동장에 붙여져 있었다. 어렵게 물어 찾아갔던 그 넓은 운동장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30여 년 전 겨울, 외투에 손을 넣은 채 운동장을 걷는 나의 뒷모습이 그려졌다. 합격자 명 ▲ 학과 친구들과 함께 인천항에서 찰칵!(출처: 이순임 동문) 단 공고문 앞에서 수험번호를 발견하고 안도했던 나. 물론 나는 ERICA캠퍼스가 더 친숙했다. 바람이 많고 허허벌판이었던 안산은 지금 아무리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옛날의 바람을 만날 수 없으리라. 친구들과 수원과 인천을 오가는 협궤열차를 탄 적도 있다. 어떻게 해서 그 많은 인원이 열차를 타고 인천항에 가게 됐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무엇이 과거의 한 순간으로 나를 이끌었을까. 벌써 학교를 졸업한 지 30년이 다 되어간다. 나도 이제 나이가 먹을 만큼 먹은 셈이다. 묵은 짐을 정리하다가 아이들의 어릴 적 앨범을 펼쳐 보게 됐다. 그 가운데 사진 한 장이 유난히 내 마음을 붙들고 놓아주질 않았다. 사진 속의 두 아들은 볼우물이 파일 만큼 헤벌쭉 웃고 있었다. 특히 눈이 좀 큰 편인 작은애의 까만 눈동자가 조명처럼 빛났다. 게다가 조막만한 양 주먹은 오므리고 두 팔은 가슴께까지 가 있었다. 보면 볼수록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나는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작동시켜 사진을 옮겨두었다. 한동안 매일 아침 사진을 보고 하루를 시작했다. 아름다운 장면은 기억을 불러내는 한, 현재에도 미래에도 늘 살아있기 마련이다. 살아있기에 만날 수 있었던 그새 어둠이 내렸고 장례식장이 어디에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도대체 모르겠군. 천천히 차를 몰며 혼잣말을 하고 있을 때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국문과였던 친구들이 많이 와 있는데 언제 도착하느냐는 물음이었다. 하긴 그 친구를 만나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대뜸 한다는 말이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였다. 나는 그 말을 오래도록 곱씹었다. 살아있다는 것은 매우 신비로운 일이다. 장례식장에 가는 동안 나는 과거라 말하는 시간 속에서 추억의 편린들을 꺼냈었다. 모두 살아있는 기억들이었다. 30여 년 전에 비해 많이 달라진 학교 전경이야말로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강렬하게 깨닫게 해 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장례식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살아있기 때문에 우리는 만났다. 사랑한대 2017년 3-4월호 이북 보기

2017-01 19

[오피니언][짧은 글 긴 이야기] 2017년, 내 인생의 선물 같은 한 해가 되길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한 해를 열심히 보낸 나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 1년이 지나 2017년을 마무리하며, 후회 없는 한 해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길 바란다. 글. 이주비(한국언어문학과 14) / 그림. 안우정 인생 23년 차가 된 소감 스물세 살,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나이다. 스물세 살은 아직도 자신에 대해 잘 모를 나이다. 스물세 살은 미숙한 어른이다. 가끔은 자신이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기도 하는. 스물세 살은 그런 나이다. 2017년, 난 스물세 살이 됐다. 대학에 들어온 지 4년째다. 학교에 입학해서 정신없이 놀다 보니 1년이 지났고, 적응 좀 했다 싶으니 2년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렇게 3년이 지나 있었다. 사회에서 스물세 살은 풋풋한 대학생이지만, 학교 안에서는 늙은이 취급받기 십상이다. 안팎의 온도차가 이렇게 심하니 어서 빨리 취업을 해서 학교를 떠나는 게 답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4학년이 된 이상 이제 취업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까지는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따뜻하게 살았지만 1년 뒤에는 냉랭한 사회로 내몰리게 된다. 그때를 대비해 준비해야 한다. 누군가는 지금도 늦었으니 당장 목표를 정해서 달려가라고 내게 말한다. 하지만 솔직히 난 아직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또 다른 누군가는 바로 그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 나이라면, 그 학년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진로를 확실하게 정해뒀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반박하고 싶다. 과연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고. 당신의 인생은 그렇게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느냐고. 벌써부터 주변의 지대한 관심이 나를 지치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유익함 2016년의 나는 정신없이 달려왔다. 아니, 2016년만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나는 내내 옆에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는지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달리기에만 급급했다. 그렇기에 나를 알아간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또한 방학을 쉬기만 하면서 지낸 게 손에 꼽을 정도다. 초등학생 때는 제외하더라도 중·고등학생 때는 공부하느라, 대학교 들어와서는 아르바이트하고 학원에 다니느라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그래도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방학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대학교1학년 겨울방학을 꼽고 싶다. 그때 특별한 일을 한 건 아니다. 말 그대로, 정말 하는 게 없었다. 책을 읽고, 보고 싶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글을 쓰고, 잠도 자고 싶은 만큼 실컷 잤다. 그럼에도 왜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묻는다면, 그 시간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게으름을 피우다 보면 온갖 잡념들이 날 사로잡았고, 내 존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태한 생활이 반복되면서 자기혐오의 감정도 들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또한 다시는 없을 유익한 시간이었다. 나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언제 다시 주어질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때를 떠올리며 나는 다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1월을 계획 중이다. 제대로 달리기 위해선 가끔은 뒹굴며 쉬는 시간도 필요하다. 이번 겨울도 그때의 겨울처럼 보내고 싶다. 그리고 난 같은 이유로 또 다른 계획을 세우게 됐다. 재충전, 그리고 다시 시작 난 느리더라도 신중히 결정한 나만의 길을 가길 원한다. 성급히 내린 결정을 믿지 못해서이기도 하고,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올해는 휴학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건 순전히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은 학교와 집만을 오가는 틀에 박힌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 속에선 제한된 경험만 가능했다. 대학 생활 3년은 이런 나에게 그전의 19년간 배운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특히 대학 생활은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나를 알아나가는 데 도움을 줬다. 그렇지만 학교에 다니면서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하기란 너무 벅찬 일이었고, 난 내가 원하는 것들만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 휴학을 결정했다. 그러나 세상만사 내 뜻대로만 되지 않는 법. 누구보다 먼저 주위의 사람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설령 그들이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더라도 무언의 압박을 주기도 했다. 아니면 나 스스로 휴학하는 이유가 타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해 뜨끔한 것일 수도 있다. 사실 그렇다고 해서 내게 특별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내 마음대로 살아보는 것. 이게 다였다. 처음엔 도저히 이해 못 하시던 부모님도 나의 거듭된 주장에 결국 백기를 드셨다. 어찌 됐건 올해 나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됐다. 평생 나에게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것에 구속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아볼 기회는 이번 한 번뿐인 것이다. 2017년을 어떻게 채워 나갈지 기대된다.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

2017-01 17

[오피니언][건강한대] 겨울철 비단결 같은 피부 만들기

겨울에는 날씨가 차고 건조해 각질이 일기 쉽다. 또한 아토피 피부염, 주부 습진 등이 악화될 수 있으며 노인은 건조 피부염으로 고생하기도 한다. 따라서 겨울철에는 어느 계절보다 적절한 피부 관리와 보습이 필수적이다. 글. 노영석 교수(한양대학교병원 피부과) / 그림. 안우정 추운 계절에 자주 발생하는 피부병 겨울에 흔히 접할 수 있는 피부 질환으로 동창, 동상, 피부 건조증을 꼽을 수 있다. 이에 대한 증상은 무엇이고, 치료 및 예방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동창은 5~10℃의 낮은 온도에 장기간 노출됐을 때 생기는 비정상적인 국소적 염증 반응으로 손가락, 발가락, 코, 귀 등에 홍색 또는 자색의 종창이 발생하는데, 소양감과 통증을 동반하며 2~3주 내에 자연 소실된다. 동창을 피하려면 손발이 젖은 상태로 추운 데 오래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따뜻한 의복 착용, 규칙적인 운동과 금연, 비타민 복용 등이 도움이 된다. 동상은 영하 2~10℃의 심한 추위에 노출돼 조직이 얼어버려 혈액 공급이 안 되는 상태를 말하며 귀, 코, 뺨, 손가락, 발가락 등에 자주 발생한다. 언 부위는 창백하고 통증이 없지만 따뜻하게 해주면 홍반, 괴사, 물집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치료는 가능한 한 빨리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우선이며, 통증이 있으면 진통제를 투여하고 죽은 조직을 외과적으로 절제하는 등 증상에 따른 치료가 필요하다. 피부 건조증은 피부 표면에 있는 지질 부족으로 수분을 공기 중으로 빼앗겨서 피부가 건조한 상태를 말하며 가려움증을 동반한다. 피부가 건조하면 거칠어지며 피부 표면에 비듬처럼 하얀 인설이 일어나게 된다. 심하면 피부가 갈라져서 균열이 생기기도 한다. 가려움증은 피부를 문지르거나 긁게 만들어 상처나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런 경우 피부 지질의 균형이 깨져서 피부 건조증을 유발하고 이것이 다시 가려움증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부드럽게 보송보송, 피부 관리 노하우 추운 계절에도 비단결처럼 고운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주의가 필요하다. 첫째, 피부에 수분을 공급한다. 샤워와 목욕의 횟수를 줄이고, 너무 뜨거운 물보다는 미지근한 물로 씻는 것이 좋다. 목욕 횟수는 일주일에 2~3회가 적당하고, 거친 때밀이 수건으로 때를 미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순한 비누나 세정 제품을 사용하고, 목욕 후에는 세제가 피부에 남아 있지 않도록 충분히 여러 번 씻는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을 때에는 문지르지 말고 가볍게 두드려 닦고, 목욕 후 3분 이내에 보습제나 로션을 바르도록 한다. 또 실내 온도가 지나치게 높지 않도록 과도한 난방을 피하고, 가습기를 사용하거나 자기 전에 실내에 젖은 빨래를 널어서 적정 습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낮은 온도에서 장시간 야외 노출을 피한다. 스키, 겨울 등산 등의 운동을 오랫동안 하는 경우 과도한 일광 노출로 인해 얼굴이 화끈거리거나 피부색이 검게 변할 수 있으므로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 피부를 보호한다. 셋째, 춥다고 전기난로 앞에 너무 가까이 있거나 피부에 오랜 시간 핫팩을 대고 있는 행동은 피한다. 이러한 경우 그물 모양의 적갈색 반점 및 색소 침착이 나타날 수 있고, 이것이 만성화되면 피부암을 유발할 수 있다. 동상과 동창, 생활 속 꼼꼼 예방법 ➊ 적당한 두께의 양말과 편안한 신발을 착용한다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않으면 말단 부위의 온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강추위가 아니더라도 꽉 끼는 장갑, 신발, 양말 등은 피한다. 종아리까지 덮는 부츠를 신거나 키높이 깔창, 너무 두꺼운 양말을 신으면 발을 조이거나 꽉 끼게 만들어 발의 혈액 순환을 방해한다. 여기에 땀까지 나면 신발 속의 습도가 높아져 동창 및 동상의 위험이 높아진다. ➋ 신발이나 속옷 등이 젖으면 신속하게 말린다 옷이나 속옷, 양말이 땀이나 물기로 젖으면 바로 마른 옷이나 속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래야 수분으로 인한 체온 저하를 방지할 수 있다. 신발이나 장갑이 젖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되도록 빨리 젖은 신발과 장갑을 벗고 신속하게 손발을 말려야 한다. ➌ 혈액 순환이 잘 되도록 자주 움직인다 추운 곳에 장시간 노출될 때는 수시로 몸을 움직여서 혈액 순환이 잘 되도록 해야 한다. 손발이 얼었을 때는 가능한 한 빨리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고, 동상이 의심되는 부위가 바닥에 닿지 않도록 한다. 특히 눈 부위가 얼었을 때는 비비거나 문지르지 않도록 주의한다.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

2017-01 17

[오피니언][타임머신] 프랑스에서 만난 안산 칼바람의 추억

인생은 우연과 선택이 쌓이면서 계속된다. 94학번인 나는 수능 1세대로 시험을 두 번 쳤고, 기대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실망했지만 재수는 싫었다. 딱히 하고 싶거나 가고 싶은 학과는 없었지만, 하기 싫은 것은 분명했다. 법대와 상경대 계열은 몸서리치게 싫었다. 대구를 벗어나고 싶었고, 특이한 학과의 이름과 당시 국내에 두 곳밖에 없다는 희소성에 끌려 나는 한양대 안산캠퍼스(이하 ERICA캠퍼스) 광고홍보학과에 입학했다. 글. 이동섭(광고홍보학과 94) 동문 ERICA캠퍼스의 칼바람과 길카페 ▲ 이동섭 동문이 함께 자취하던 동기와 사진을 찍고 있다. 내 모교는 추위로 기억된다. 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입학식을 했던 행당캠퍼스(서울캠퍼스)는 추웠고, 수업을 듣는 ERICA캠퍼스는 몹시 추웠다. 멀리 서해의 바람은 캠퍼스까지 곧장 불어와 3월에도 안산은 여전히 한겨울이었다. 학교 건물은 낮고 흩어져 있어 바람을 막지 못했다. 바닷바람은 물기를 가득 머금어 차갑고 날카로워 외투를 비집고 몸 안쪽까지 파고들었다. 햇빛이 화창해도 몸은 으슬으슬할 만큼 위력적이었다. 우리는 ‘칼바람’이라 불렀다. 학교 정문을 나서면 왼편으로 추수가 끝난 논이 바닥을 휑하게 드러낸 채 저 멀리까지 이어졌다. 해는 일찍 졌고, 추위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석호상가 지하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2차로 선배들은 어디서 신문과 종이 뭉치, 나뭇조각 등을 가져와 학교 밖 길거리에서 불을 피워주었다. ‘길카페’였다. 바닥에 앉으면 땅의 한기가 훅 올라오면서 취기를 몰아냈다. 거창한 구호를 외치며 급하게 소주 몇 잔을 마시면 몸이 다시 데워지며 추위가 물러갔다. 취기와 추위를 모두 끌어안고 우리는 작은 모닥불을 피운 채 이야기를 하고, 학과와 동아리 노래 등을 배웠다. 남자 후배에게 인기 많았던 몇몇 선배들은 기타를 치며 각종 요상한 노래를 쉴 새 없이 불렀다. 혼자 부르면 부끄러워도 같이 부르면 신나는 그런 노래들이었다. 온기와 웃음이 가득했던 그 길카페가, 나는 좋았다. 오렌지족의 시대와 도서관 ▲ 이동섭 동문이 자취하던 집 1988년부터 1997년까지는 한국 역사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간인 듯싶다.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이뤄지고, 경제적으로 번영했던 10년이다. 정치와 경제의 안정은 청춘들에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혹은 죄책감 없이 살 수 있도록 만들었다. X세대와 오렌지족의 시대였으니, 데모와 나라 걱정은 지나간 유행이었다. 이때의 시대적 명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라’였다. 대학에 오니, 다른 애들은 모두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이 확실히 있는 듯 보였다. 당시만 해도 하고 싶은 일이 없었던 나는 초조했다. 무언가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고 열심히 공부하고 싶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불안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친밀하게 굴지 못했던 성격 탓에 공강 시간은 주로 혼자 시간을 보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주친 책을 읽고, 그 가운데 재밌게 본 책의 저자의 다른 책과 그 저자에게 영향을 준 책들을 찾아 읽었다. ▲ 이동섭 동문이 학년 MT로 가평을 갔을 때 '듀스'의 노래에 맞춰 춤을 연습하던 모습 독서 리스트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했고, 나는 그 예측할 수 없음이 즐거웠다. 도서관에 비치된 거의 모든 주간지와 월간지의 목차를 보고, 관심 있는 기사들은 복사해서 밑줄 치며 읽었다. 탐독은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들로 넓어졌다. 그렇게 해서 나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와 왕가위 감독의 영화, 반 고흐와 에곤 쉴레의 그림, 로버트 프랭크와 디안 아버스의 사진, 장정일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김현의 문학비평과 기형도의 시, 베토벤과 슈만의 음악 등을 알게 됐다. 문화와 예술의 테두리 안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작품을 창작할 재능이 없다는 두려움에 선뜻 뛰어들지 못했다. 졸업을 하면서 나는 광고회사가 아닌 미술관에 취직해서 1년 남짓 일했으나,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했다. 남들처럼 살았으나 남들처럼 살아지지 않았다. 월급의 쾌감도 무뎌졌고, 소주로도 고민은 도저히 해결되지 않았다. 2000년 5월 1일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파리 유학과 예술인문학 파리 유학 시절, 4년 동안 맞았던 안산의 습기 찬 칼바람이 그리우면 파리에서 가장 가까운 바닷가 도시 르아브르(Le Havre)로 가곤 했다. 아이슬란드 너머 북해에서 영국을 거 ▲ '영화로 맺어진 인연(영맺인)'이라는 소모임에 서 영화 촬영 실습을 하고 있는 이동섭 동문 쳐 그곳으로 밀려오는 바람은 차갑고 눅눅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으로 그 바람을 맞으며 깨달았다. 지 금의 나는 ERICA캠퍼스 도서관에서 본격적으로 길러진 셈이구나! 그곳에서 보냈던 시간들로 인해 나는 파리에서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그것들을 관통하는 학제 간 연구에 관심이 생겼던 듯하다. 그것이 내 대학 생활의 가장 큰 추수물이었다. 덕분에 파리에서 10여 년 동안 사진과 현대 무용, 영화와 패션, 미술과 공연 등 여러 분야를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다. 그 중심에는 항상 시대와 사람에 대한 질문이 놓여 있었다. 나는 예술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연구하고, 그것을 동시대의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방송과 신문에서 예술 작품을 재료 삼아 인문학을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한편, 대학에서는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를 융합시키는 강의를 하고 있다. 셔틀버스는 한대앞역에서 ▲ 학교 앞에서 동기, 후배와 사진을 찍는 이동섭 동문 얼마 전, 내가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시고 연락하신 은사님께서 후배들에게 특강을 부탁하셨다. 졸업하고 약 15년 만에 캠퍼스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상록수역에서 내려서 셔틀버스를 타거나 태화버스를 타야만 했는데, 한양대 학과 잠바를 입은 학생들이 아무도 그곳에서 내리지 않기에 의아했다. 그들을 따라 한대앞역에서 내렸다. 풍경이 너무 많이 변해서 다른 도시 같았다. 학교 앞 드넓게 휑했던 논은 모두 건물로 가득했고, 길카페를 했었던 인도는 어딘지 흔적도 없었다. 우리 학과도 내가 다녔던 단과대 건물을 떠나 새로운 건물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변화가 낯설고 아쉬웠으나, 예전의 나처럼 변하지 않은 칼바람을 맞으며 후배들은 꿈을 키우고 있었다.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

2016-11 01

[오피니언][짧은 글 긴 이야기] 백패커의 하루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새 종족이 지구를 침범했다. 그 종족의 이름은 바로 백패커(Backpackers). 21세기판 유목민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 배낭족이다. 그들은 큰 배낭을메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지구의 이곳저곳을 탐험한다. [글과 사진. 최정윤(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14)]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터키 백패커 종족의 수명은 개인차에 따라 며칠부터 몇 년까지 그 기간이 다양하다. 이들은 홀로 다니기도, 짝을 지어 친구들 혹은 연인끼리 다니기도 한다. 피부색도 다양하며 언어도 수백 가지를 사용한다. 따라서 백패커 종족을 형언할 하나의 단어는 없으며, 구성원도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천차만별이다. 지난겨울 나는 백패커의 주 구성원인 20대 청년이었다. 나의 정복 장소는 유럽 발칸반도 남반에 위치한 그리스와 유럽과 아시아를 사이에 낀 이색적인 나라 터키였다. 백패커가 되기 위해 특별히 요구되는 능력은 없다. 쌓인 일들을 옆으로 잠시 미뤄둘 시간과 최소한의 비용만 있다면 누구나 세계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다. 여기에 열정과 호기심만 있으면 완벽한 백패커 한 명이 탄생한다. 지식과 여행을 계획하는 준비성, 빠른 적응력이나 의사소통 능력은 출발하지 않은 사람의 걱정일 뿐이다. 백패커는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싼 비행기 표를 찾는다. 나는 인천에서 모스크바를 경유해 아테네에 도착하는 표를 샀다. 싼 티켓을 구하다 보니 모스크바 공항에서 14시간을 경유해야 했고, 노숙을 했다. 배낭의 모든 고리에는 자물쇠를 채워 발밑에 두고 잠을 청했다. 어렵게 탄 비행기 너머로 펼쳐진 그리스 아테네의 하늘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올 법한 풍경과도 같았다. 파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에는 여러 신들이 모여 나의 입국을 환영해 주는 것 같았다.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여행의 모든 과정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공항에서 아테네 중심지인 신타그마 광장으로 가는 메트로를 탔다. 경치를 구경하는 내게 여행을 같이하는 친구가 “야!”라고 속삭였다. 고개를 돌리자 내 가방을 보라는 눈짓을 했다. 나는 내 가방을 쳐다봤고, 소매치기를 조심하려고 배 앞으로 맸던 가방은 열려 있었다. 내 앞에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홱 고개를 돌렸다. 빨간 손톱을 한 그녀가 머리를 쓸어내리며 태연하게 창문을 쳐다봤다. 당황한 나는 소리를 질러야 할지, 여자의 머리카락을 낚아채 싸워야 할지 0.1초 동안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문이 열렸고 여자는 유유히 빠져나갔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가슴을 후벼 팠다.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만 보면 가방을 움켜잡기에 바빴고, 새로운 도시가 무서웠다. 10분 거리라고 했던 숙소는 길을 헤매 4시간이 걸려 도착했고, 그날 모든 일정을 취소해야 했다. 나의 로망이었던 배낭여행의 첫날이 화려하지만 냄새나게 그 막을 내렸다.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날씨 때문에 행선지를 바꿀 때도 있다. 터키에선 카파도키아에서의 벌룬 투어(열기구) 탑승을 위해 계획했던 세 개의 지역을 취소하고 달려가야만 했다. 아테네에선 날씨가 좋지 않아 항구에서 배가 뜨지 않았고, 산토리니에서 이스탄불로 넘어가야 했던 우리는 30만 원 이상을 손해 보며 울며 겨자 먹기로 비행기를 타야 했다. 불가항력인 날씨에 당할 때 속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돌아오는 것 모두 그 나름의 가치가 있었다. (좌상) 12시간 버스를 타고 달려 간 카파도키아에서 경험한 벌룬투어 (우상) 사프란볼루라는 작은 마을. 고요하고 조용한, 그리고 꽃내음이 잔잔하게 흐르던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좌하) 바위 동굴로 만들어진 생활 공간. 카파도키아의 바위 동굴에서 아늑한 잠을 청한 후, 기쁜 마음에 점프~ (우하) 석양을 등지고 처음으로 여행을 함께한 친구와 함께 찰칵~ 20대의 열정과 청춘을 만끽한 시간 ‘해냈다’라는 뿌듯함이다. 고생했던 경험은 오래간다. 아테네 전경이 다 보이는 리카비투스 언덕을 올라갔을 때다. 케이블카를 찾지 못해 3시간의 강제 하이킹을 했고, 비와 눈이 섞인 강풍 속을 뚫으며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들과 뛰어올라 갔다. 열악한 날씨 덕분에 언덕 정상엔 아무도 없었고, 눈앞에 펼쳐진 엄청난 야경을 향해 우리는 애국가를 목이 터지도록 열창했다. 당시 촬영한 동영상을 보니 손발이 오그라들고 정신 나간 무리에 불과했지만 땀과 비가 섞여 뜨거운 몸을 식히며 우린, 20대의 열정을 그리고 청춘을 만끽했다. 미친 듯이 여행하며 시간의 흔적과 역사적 순간에 현장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은 짜릿할 정도로 흥분됐다. 하지만 항상 놀 수는 없는 법. 여행에도 휴식이 필요하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며 터키인들과 웃고 함께 얼굴을 붉혔으며, 밤에는 큰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의 백패커들과 이상한 노래에 맞춰 이상한 춤을 췄다. 맥주를 마시며 동이 틀 때까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사프란볼루 흐드를륵 언덕에선 절벽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생각을 적어보곤 했다. 여유로웠다. 한국에서의 여행은 많은 계획과 준비가 요구되는 이벤트적인 개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백패커들의 여행은 다르다. 한 도시에서만 열흘을 머물고 백패커로서의 삶을 끝내거나 언제 끝날지 모를 삶을 살며 이곳저곳에 발걸음을 남기는 백패커도 있다. 여행을 성대하고 원대한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말자. 한 번의 자유여행으로 난 ‘여행쟁이’가 되고 싶다. 백패커로서의 삶에 온전히 충실하진 못하지만 대신 얇고 긴 삶을 꿈꾼다.

2016-11 01

[오피니언][건강한대] 체중 조절 나만의 성공 비법

겨울이라고 살 빼기가 쉬운 것은 아니지만, 잘 생각해보면 겨울이 오히려 체중 조절을 하기에 절호의 찬스다. 겨울철의 체중 증가를 잘 극복한다면 나이가 들면서 점점 늘어나는 뱃살을 줄이는 전략이 될 수 있다. [글. 이창범 교수(한양대학교구리병원 내분비내과) / 그림. 박하영] 생활 리듬 깨지기 쉬운 계절 체중 관리에 민감한 젊은 여대생의 경우 겨울 방학은 생활의 리듬을 잃어버리기 쉬운 기간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이는 비단 학생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굳이 외국계 기업이 아니더라도 외국계 기업과 함께 일하는 많은 한국 기업도 겨울 휴가가 상당히 길기 때문이다. 한국의 비만 환자들의 계절별 변화에 대한 연구 결과는 없다. 그러나 미국인들에 대한 연구결과를 보면 겨울철 비만의 원인을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겨울철 휴가 기간에 매년 약 평균 0.5kg의 체중 증가가 있으며, 이러한 증가가 장래 비만에 이르는 과도한 체중에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겨울철 체중 증가의 이유로 바깥 온도 변화에 따른 생리적 열 발산 의 변화를 꼽을 수 있지만, 요즘처럼 실내 온도가 높은 곳에서 생활하는 도시인의 변화를 이것만으로 설명하긴 힘들다. 겨울철 체중 증가는 운동량 부족과 식사 문제가 중요한 원인으로 보인다. 특히 겨울철 식사에서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잦은 모임에서의 음주다. 맥주 서너 잔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약 밥 한 공기의 칼로리를 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어떤 비만 환자는 맥주가 칼로리가 높아 소주를 선호한다고 하는데, 이 또한 큰 오해다. 맥주 서너 잔이나 소주 서너 잔은 똑같은 칼로리를 가지고 있다. 아울러 이러한 알코올에 더해 각종 모임에서 자주 접하는 삼겹살과 같은 지방식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 그날 저녁 하루만의 칼로리로 일주일간의 다이어트가 무너지기 십상이다. 살 빼는 데 좋은 운동과 식습관 겨울철에는 일상생활에서 운동량이 줄어드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운동의 원칙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비만을 위한 운동은 일주일에 세 번 이상 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겨울철의 운동량 감소를 생각하면 매일 하는 것이 좋다. 매일 운동을 하려면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날씨 때문에 밖에서 운동하지 못하는 것에 대비해 실내에서 할 수 있는 훌라후프, 자전거, 보행기, 트레드밀(러닝머신) 등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기구가 없더라도 윗몸 일으키기, 스트레칭, 제자리 뛰기 등으로 땀을 흘릴 수 있을 정도의 운동을 해야 한다. 살을 빼기 위해서는 식습관도 중요하다. 푸른 채소류는 운동량 감소에 따른 변비에 도움을 주며 포만감을 제공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칼로리를 줄여준다. 또 겨울이라고 수분 섭취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호흡기계 점막의 수분이 부족하면 공해 물질의 자연 배출에 지장을 가져오며 감기나 호흡기계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겨울철에 큰 감기를 몇 차례 앓고 나면 그해 겨울의 체중 조절은 엉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아울러 하루가 짧기 때문에 점심을 거르고 저녁을 많이 먹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금물이며 세끼를 고루 적당히 먹는 것이 필요하다.

2016-11 01

[오피니언][타임머신] 내 학창 시절의 모든 것, <한양저널>

나는 1980년대 중후반에 대학에 다녔다. 학창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영자신문사 <The Hanyang Journal(이하 한양저널)>에서 보냈다. 그 당시 영자신문사는 출입할 때마다 긴장감을 주면서도 방황하는 청춘들을 끌어들이는 마력 같은 게 있었다. 일단 '먹고 자는 문제'가 해결됐다. 데드라인이 주는 엄청난 중압감 내 전공은 영문학이었지만 교실보다는 학생회관 3층 신문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월등히 많았다. 막차도 끝난 시간이면 학생회관 경비 아저씨의 눈을 피해 위험천만하게도 선홈통(빗물을 내리기 위해 지붕에서 땅바닥까지 수직으로 댄 홈통)을 타고 신문사에 들어가 밤새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들곤 했다. 이렇게 선후배들과 일탈 생활을 하다 보니 정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학과 수업을 얼마나 소홀히 했던지 시간에 몰려 방학 숙제 리포트를 베껴서 제출했다가 영문과 김일곤 교수님의 지적을 받고는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기사를 쓰면 고료가 나왔다. 학교 앞 중국집 ‘진미루’에서 외상 자장면을 배달시켜 먹고는 원고료가 나오면 뭉텅이로 갚았다. 묘하게도 기사를 마감하는 날, 그 전달 원고료가 지급됐다. 그러면 우리들 (주무, 학생편집국장, 외국인 지도교수, 기자 등 20여 명)은 파티를 했다. 한 달 고료는 하루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증발되기 일쑤였다. 학생들이 무슨 스트레스냐고 하겠지만 데드라인을 정해놓고 영어로 기사를 작성하는 일에는 엄청난 중압감이 있었다. 나는 영문과 학생이었지만 영어에 목말라했던 곳은 강의실보다는 오히려 신문사였다. 2학년 때 과락률이 높아 악명을 떨쳤던 ‘The Norton Anthology of English Literature(영문학사)’ 과목을 들었는데 2학기 때 ‘자율 펑크’를 냈다(지금 한양대 교무처장이 된 김성제 조교께서 백지 답안지를 내라고 조언했다). 영어 실력이 갖춰진 4학년 때 재수강을 했는데 교수님이 채점을 하면서 ‘이 학생이 누군가?’라고 물을 정도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영자신문사에서 먹고 잔 덕택을 본 것이다. 혹독했던 겨울 방학 집중 훈련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영자신문 기자들은 겨울 방학 때 집중적으로 훈련을 받았다. 해병대 훈련에서 육체적 고통이 통과의례 라면, 영자신문사 훈련에서는 정신적 고통이 통과의례였다. 교관들 (선배들)은 <주간조선>을 한 페이지씩 찢어준 뒤 이튿날 오전까지 번역, 제출하는 숙제를 냈다. 주어를 찾다가 밤을 꼬박 새고는 아침에 벌게진 토끼 눈을 서로 확인하고는 허리를 꺾었다. 눈이 쌓여 발이 푹푹 빠지는 진사로를 오르다가 도망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엉터리 번역을 제출해야 하는 것이 낯 뜨거웠고, 선배들의 ‘사랑의 매(당시에는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가 무서웠다. 하지만 이 과정을 견뎌내야 영자신문 기자로 인정받았다. 회초리를 드는 선배들을 욕하고, 가슴을 후벼 파는 면박에 반감을 키우면서도 묘한 고마움을 느꼈던 시절이었다. 그리곤 우리도 선배가 됐다. 후배들을 잡는 역사가 반복됐고, 견디 지 못한 후배들은 등을 보이기도 했다. 후배들의 반발에서 설명하기 힘든 배신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치열했던 신문 제작 과정 1개월에 한 번 4페이지 또는 8페이지씩 만드는 신문(당시는 스탠더드 판형)인데, 제작 과정이 치열했다. 격론이 오가는 기획회의에서 기사와 필자가 선정됐다. 교내외 취재(대학로 공연을 고정으로 다룸)를 한 뒤 영어로 기사를 작성했다. 학생부장이 수정하고 학생편집국장이 다시 첨삭했다. 그리고 외국인 교수가 교정하고 한국 지도 교수가 오케이 사인을 내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기사가 완성됐다(당시는 반정부시위 절정기인 1980년대 중반으로 안기부에서 학생들의 동태를 살필 때였다). 최종 원고는 신촌에 있는 삼영인쇄소로 넘겨졌다. 신문을 받아들고는 새벽에 진사로에서 배포했다. 신문을 받아보는 학생 들의 얼굴을 볼 때 스스로 뿌듯하고 대견스러움이 가슴에 꽉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The Korea Herald>가 1985년 대학영자신문 콘테스트를 했는데 <The Hanyang Journal>이 대상을 받았다. 이듬해에도 최우수 편 집상과 우수 기사상을 받았다. 상패를 들고 총장께 보고하러 갔다가 격려금을 받은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선후배 간의 끈끈한 정 신문 제작 과정에 피땀을 쏟았기에 선후배와 동료들 간 끈끈한 정이 쌓여갔다. 사회에 진출해 잘나가는 선배들을 보고는 따라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연합뉴스 일본 지사장을 두 번이나 했던 김용수 선배는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일본 정부 문서를 찾아내 위안부 기사를 국내에 처음 보도해 한국기자협회에서 시상하는 올해의 기자상 을 잇따라 받았다. 여러 후배들이 그를 본받아 기자가 되려고 밤잠 안 자고 노력했다. 가을바람이 불 때 언론사 입사 시험을 치러 다니면서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 절감했다. 번번이 낙방했지만 가끔 학교에 들러 막걸리를 사주는 선배들의 격려에 마음을 다잡곤 했다. 지금은 영자신문사 출신들이 제법 많이 일간지와 방송사로 진출해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연합뉴스는 물론이고 KBS, MBN, 세계일보, 한겨레, 동아일보, 스포츠서울, 코리아타임스, 코리아헤럴드, 문화일보 등에 기자 또는 PD를 배출했다. 내가 기자가 된 것도 <한양저널>과의 인연 때문이다. 한양대 이영무 총장과 김성제 교무처장도 영자신문사 출신이다. 전공이 각기 다른 별동대로 구성된 학생 조직 중에서 매우 다양한 곳에 인재를 배출한 게 영자신문이 아닌가 싶다. 원래 <The Hanyang Times>로 창간한 뒤 1980년 초 강제 폐간됐다가 복간되면서 <The Hanyang Journal>로 태어났다. 복간된 6월 중순 전후로 홈커밍데이 모임을 개최한다. 사회 진출 뒤 만나기가 여의치 않았던 선후배들이 학교에 모여서 술잔을 기울이는 기회다. 해산할 때 왕십리 골목길에서 발을 구르며 주먹을 흔들면서 구호를 외친다. “H, I can. Y, I can. T, I can. Hanyang Hanyang Times, Ya!” “Leaves, we do. Grass, we do. Leaves of grass, Hanyang Hanyang Journal, Ya~”(Leaves of Grass는 월트 휘트먼의 시 제목) (좌상)신문방송학과 오진환(왼쪽)·박영상 명예교수. <한양저널> 지도교수로서 미래 언론인 양성에 힘썼던 두 교수가 지난 1984년 겨울 학생기자들과 함께 경북 도산서원을 둘러본 뒤 촬영했다 (우상) <한양저널> 학생기자들이 1985년 울릉도 하계수련 도중 섬 일주를 하고 있다. 맨 오른쪽이 필자,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권순일 동아일보 기자 (좌하) 한양대 김성제 교무처장(앞줄 왼쪽 두 번째. 당시 <한양저널> 주무)이 1985년 여름 울릉도 성인봉을 학생기자들과 올랐다 (우하) 김성제 교무처장(오른쪽 두 번째)과 필자(맨 오른쪽)가 1985년 여름 울릉도 성인봉을 오른 뒤 쉬고 있는 모습 ▲ 1985년과 1986년에 <The Korea Herald>가 개최한 대학영자신문 콘테스트에서 <한양저널>이 대상과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2016-10 31

[오피니언][한대 단상] 일상적인 습관으로의 독서

책 읽기 좋은 계절이 왔다.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 상반기에는 한국 소설 최초로 맨부커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화제가 됐다. 세계 출판 시장에서 사랑받는 한국 문학을 짚어보고, 바람직한 독서문화에 대해 살펴본다. (글. 이구용 케이엘매니지먼트 대표·출판칼럼니스트 / 그림. 박하영)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 문학 2016년은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 문학이 2011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이후 가장 큰 주목을 받은 한 해다. 이 책은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뉴욕타임스와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2012년 봄에 신경숙은 세계적 권위의 맨아시아문학상을 수상했다. <엄마를 부탁해>는 지금까지 34개 나라로 번역판권이 팔렸고, 세계 여러 나라의 수많은 유력 언론매체로부터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한국문학은 글로벌 무대에서 큰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2013년 등장한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은 미국과 영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지금까지 29개 나라로 판권이 팔리며 한국 문학의 명성과 저력을 이어갔다. 그 후, 2015년 1월과 2016년 2월에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영국과 미국에서 각각 출간됐다. 지난 5월에 이 작품이 맨부커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면서 한국 문학은 물론 한국 출판 저작물이 세계 출판 시장에서 그 입지를 다지며 한층 도약하는 기회를 가졌다. 글로벌 독자들은 한국 문학의 다양성을 차례로 경험하면서 그 매력에 점차 큰 호응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정명의 <별을 스치는 바람>은 영국에서 한 해 동안 번역 출간된 해외 소설 문학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에 수여하는 문학상인 ‘인디펜던트 해외문학상(Independent Foreign Fiction Prze)’ 후보에 올랐다. 정유정의 <7년의 밤>은 독일어권 유력 매체인 <디 자이트(Die Zeit)> 집계 ‘2015올해 최고의 범죄소설 톱 10’에 오르며 한국 장르문학 분야의 우수성과 가능성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또 지난 9월에는 프랑스 ‘코냑(Cognac) 도서전’ 선정 ‘2016 해외 최고의 추리소설 톱 10’에 올라 거듭 그만의 저력을 과시했다. 정유정의 최신 장편소설 <종의 기원>은 지난 9월에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의 펭귄북스를 비롯해 영국,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 벌써 다섯 개 나라로 번역판권이 팔린 상태다. 김언수의 장편소설 <설계자들>은 지난 8월에 프랑스에서 ‘2016년 추리문학 그랑프리’ 최종 경쟁 후보작에 오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문학출판의 명문인 호주의 텍스트(TEXT)출판사로 판권이 팔려 영어권 독자를 넘어 세계 독자들을 만나게 됐다. 편혜영의 <재와 빨강>과 <홀>은 지난봄 두 작품의 영어판권이 함께 팔리면서 2017년과 2018년에 연속으로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언어권마다 다른 출판·독서문화 필자는 출판저작권 에이전트로서 업무 성격상 여러 나라 다양한 언어권으로 출장을 다니면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어느나라 어느 언어권에서 어떤 책들이 잘 읽히고 덜 읽히는지를. 일례로, 유명 베스트셀러 작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언어권에서는 출간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그리고 밀리언셀러라 하더라도 언어권에 따라서 좋은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현지 출판사의 제작과 홍보 그리고 유통과 판매의 수완에 따라 현지 독자의 반응에 차이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와 관계없이 나라와 나라 혹은 언어권과 언어권에 따라 큰 격차를 보이는 예가 종종 있다. 언어권에 따라 철학적 사유가 녹아 있는 문학, 추리를 기반으로 한 문학, 그리고 달콤한 사랑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로맨스소설문학이 각각 대중의 사랑을 받듯 출판 시장의 성격은 저마다 차이를 보인다. 이처럼 각 언어권마다 출판문화와 독서문화는 다르게 나타난다. 따라서 문학을 해외 여러 나라로 수출하는 필자는 다양한 문학을 발굴하여 각 영역에서 선호하는 문학을 각각 선별해 진출시킨다. 그러다 보니 다양하면서도 독특한 개성과 뛰어난 작품성 그리고 대중적 접근성을 지닌 작가와 작품을 찾는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현상을 발견한다. 바로 각국 독자들이 형성하고 있는 독서문화다. 작은 의미에서 보면 한 개인의 독서 습관이다. 결국 한 사람의 독서습관이 한 나라의 독서문화, 나아가 산업적인 맥락에서의 출판문화의 골격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습관적으로 읽고 사유하는 자세 독서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습관적인 행위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 습관을 견지하는 것이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한국의경우, 아쉽게도 상당수의 독자들이 어린이와 청소년 시절에 이미 일상적인 행위로서의 독서가 아닌 책임과 의무를 기반으로 한 목적성 짙은 독서 행위를 몸에 익힌다.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인 습관으로의 독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독서가 어떤 특별한 문화 행위가 아닌 일상적인 습관에서 나오는 행위라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으며, 바로 그런 기반에서 어떤 형태의 책이든 자연스런 독서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요즘 생각이다. 잡지와 만화, 무협지・로맨스・추리 등 장르문학과 순문학, 나아가역사, 철학 등 인문 교양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을 쉽게 손닿는 곳에 두고 수시로 즐기는 상황이 되어야 한다. 한 나라 한 언어권에서 세계적인 문학 작품과 작가를 글로벌 무대로 배출하는 것은 해당 국가와 언어권 독자들의 몫이 크다. 글로벌 무대에서 그 작품과 작가가 파워를 지니게 되는 데에는 그 나라 독자들의 관심과 열정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 역시 이런 독서문화의 터전 위에서 지극히 자연스럽게 건져 올리는 결실이다. 많은 독자들이 일상에서 관심 갖고 가까이 할 때 바로 그런 행운이 어느 날 우연히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도리스 레싱이 말했듯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이제 초겨울로 접어든다. 손 내밀면 닿을 수 있는 곳곳에 어떤 분야의 책이든 놓아두고 단 몇 줄 혹은 몇 쪽씩이라도 습관적으로 읽고 사유하는 버릇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