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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1 기획 >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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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없는 에세이] 고전의 매력에 빠지다

김수아 학생(간호학 18)의 에세이

사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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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Ayat

내용
“널 좋아해.” 연애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에서 시작된다.
연애를 하면 사람은 그것에 정신을 집중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별것도 아닌 일에 행복해한다. 그 대상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에 흠뻑 빠져 즐거워한다. 고전을 좋아하게 되는 것도 이런 과정과 다르지 않다. 고전 속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들에 호감을 느끼기도 하고 책을 쓴 저자가 마음에 들기도 한다. 나는 세 가지 이유로 고전에 매력을 느꼈다.
글. 김수아(간호학 18)
 

색다른 나의 모습을 찾아 도전하기


고전은 다른 시선과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볼테르의 대표작 <캉디드>에서 캉디드의 스승 팡글로스는 말한다.
“나는 항상 처음과 같은 생각이라네. 왜냐하면 결국 나는 철학자니까. 내가 한 말을 부인한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지.”
팡글로스가 낙관주의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자신의 체면 때문이었다. 체면을 지키고자 고정된 시선을 가지게 될 때가 있다. 흔히 자기를 확인하는 방법은 거울을 보는 것이다. 나 또한 자연스레 거울을 본다. 유리에 비친 나를 바라보며 자꾸만 ‘다른 사람은 지금의 나를 어떻게 볼까?’ 무의식으로 평가하게 된다.
캉디드의 연인 퀴네공드는 많은 시련 속에서 아름다움을 잃었다. 몸과 마음은 타인이 나를 정립하는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퀴네공드를 보며 아름다움에 대해 다른 접근을 하게 되었다. 아름다움은 누구를 위한 걸까? 정작 나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서 외모를 가꾸고 마음을 착하게 먹었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녀의 존재는 그대로인데 사람들은 변화된 퀴네공드를 예전과 같이 대우하지 않았다. 즉 타인이 정립하는 이미지는 유한할 뿐이고 어쩌면 체면이란 올가미로 인해 나다움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분명 나에게는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 싶은 모습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러한 고정된 태도에서 조금 벗어나 색다른 나의 모습을 찾아보고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지나친 근심보다는 현재에 충실할 것


두 번째로 고전을 통해 삶의 가치관을 재정비한다. 책에 등장하는 마르탱의 모습은 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사회주의 미국을 상상하다>라는 책을 읽은 후, 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회의를 느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국가가 민주사회주의로 제도화된다면 과연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악만이 최후에 승리할 것이고 그렇게 역사는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꿈에 대한 열정이 식었다.
칼비노는 자본주의에 속해 있는 터전에서 노동의 가치와 윤리를 재점검하며 노력하는 자세를 중요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열심히 노동만 하며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들보다는 마르탱과 같이 미래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 생각하는 것이 더 지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고민하고 걱정한들 모든 해결책을 명확히 찾기란 불가능하단 걸 알게 되었다. 칼비노는 반형이상학적인 자세를 추구하며 스스로 직접 실천하면서 적용해 풀 수 없는 문제라면 그러한 문제 자체를 던지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은 세 가지 악에서 벗어나게 한다고 했다. 그 세 가지란 권태, 방탕, 궁핍이다. 마르탱을 바라보며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되었다. 지나친 근심에 빠져 있다면 현재에 다시 충실해 밭의 경작물을 거두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걱정은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관용 없는 고정관념은 다툼의 원인

마지막으로 우리는 고전과 서로 소통하고 대결하는 과정에서 관용을 배운다. 캉디드는 모든 상황이 선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며 낙관주의를 버리게 된다. 하지만 모든 일에 있어 선악을 뚜렷이 구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악이란 주관적이고, 정의할 수 없는 것이며, 측량되지 않는 것이다.(161쪽)” 칼비노는 악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악이란 개념은 나라의 문화에 따라, 개인의 도덕적 판단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이념과 사상, 선과 악에 대해 생각하며 비판하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일인가? 그의 주장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 남한과 북한의 이념 싸움, 종교 간의 대립이 이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각자가 세운 악의 기준과 옳고 그름에 빠져 다른 이의 생각을 무시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분명 악행은 세상에 존재한다. 하지만 선악을 지나치게 나누다 보면 정작 선을 향해 나아가지 않고, 다른 이를 관용하지 못하는 또 다른 악이 생겨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고정관념이 되면 다툼을 발생시키니 조심해야겠다고 느꼈다.

 

고전은 옛날 책(古典)이 아닌 생각을 만드는 책(考典)


칼비노는 옛날 책이든 현시대의 책이든 상관없이 작품이 우리에게 미치는 반향의 효과야말로 고전의 조건이라 표현했다. 나는 그 효과를 실감하며 고전은 나에게 옛날 책(古典)이 아닌 생각을 만드는 책(考典)임을 느꼈다.
졸업하기 전까지 최대한 다양한 고전을 많이 읽어보고 싶다.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나와는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시간을 들여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한양대 79선 고전’ 목록을 차근차근 읽어봐야겠다. 저녁 시간 30분 동안 고전 읽는 시간을 통해 시대를 뛰어넘어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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