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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9 기획 >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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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두고두고 좋은 인연, 한양대와 바둑

정수현(명지대 바둑학과 교수·영어영문학과 76)

사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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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KuaS

내용
나는 대학에 입학했을 때 바둑 전문선수인 프로기사(棋士)였다. 고등학생 때 프로로 데뷔한 후 한양대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했다. 당시 프로기사라는 희귀한 직업을 가진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학교나 바둑계에서 꽤 인기가 있었다. 신문이나 방송 등 매스컴에 내가 둔 시합과 함께 자주 이름이 올랐다.

정수현(명지대 바둑학과 교수·영어영문학과 76)


 

▲ 정수현 교수가 바둑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바둑과 학업 두 마리 토끼를 잡다

대부분의 대학생 스포츠 선수들이 그렇듯이 기사 생활과 대학 생활을 양립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바둑 시합과 학교 수업이 겹칠 때 출석 문제가 골칫거리였다. 전공과목으로 ‘햄릿’을 가르치던 노교수님이 계셨는데, 학생들에게 일일이 출석표를 나눠주며 직접 이름과 학번을 써내도록 했다.
시합 시 출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한 가지 묘수를 생각해냈다. 바둑 시합이 오전에 열리니 오후에 배정된 교과목을 신청하기로 한 것이다. 즉 오전에 시합을 마치고 얼른 학교에 가 수업에 참석한다는 전략이었다. 그런데 이 방법도 문제가 있었다. 그 무렵에는 한 판의 시합을 하는 데 각자 2~3시간씩 주어졌기 때문에 이 시간을 다 쓰면 오후 3~4시에 끝났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바둑을 최대한 빨리 두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할당된 시간을 최대한 줄여 가급적 점심 무렵에 끝내려고 애썼다.
이로 인해 나는 속기파(速棋派) 기사로 변하게 됐다. 원래는 수읽기를 많이 하는 타입이었는데, 바둑과 학업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보니 감각적으로 두는 속기파가 된 것이다. 그 덕분이었을까. 나는 방송에서 개최하는 속기 시합에 강해졌다. KBS바둑왕전과 SBS바둑최강전에서 고수들을 꺾고 결승까지 오르는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아쉽게도 최고수 이창호 9단을 만나 두 번 다 준우승에 그쳤지만, 출석을 위한 빨리빨리 전략이 속기 훈련이라는 색다른 이점을 준 것이다.

 

진짜 ‘바둑학 교수’가 되기까지

 

나의 대학 생활은 상당히 바쁜 편이었다. 당시 학생이었지만 나는 새롭고 창의적인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편이었다. 한국기원에서는 바둑시합 외에도 초보자나 아마추어를 위해 바둑강좌 코스를 만들어 직접 가르쳤다. 또한 월간 바둑지에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성신여대 등 다른 대학교에 가서 바둑을 가르치기도 했다. 새벽에는 영어학원에 다녔다.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해서인지 수업 시간에 가끔 졸았다. 한번은 맨 뒷줄에 앉아서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데, 분위기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부스스 눈을 떴더니 학생들이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달콤하게 낮잠을 자다가 교수님이 문장을 읽어보라고 호명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도 나는 리포트 쓰는 것을 좋아했다. 한번은 짝사랑의 비애를 담은 영어 에세이를 써서 A+를 받았다. 다른 과목에서도 리포트 점수는 높았다. 돌이켜보면 나의 대학 생활에서 가장 많은 도움이 된 것은 리포트 쓰기였던 것 같다. 리포트 작성은 글쓰기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훈련에도 도움이 됐다. 졸업 후 나는 대학에서의 경험을 살려 바둑 관련 서적을 30여 권 저술했다. 그중에는 <바둑 읽는 CEO>, <고수경영>과 같이 바둑의 지혜를 다룬 에세이도 있다. 이런 책을 많이 쓴 덕분에 나는 바둑 기자들로부터 ‘바둑학 교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20년 전에 명지대학교에 사상 처음으로 바둑학과가 생겼을 때 진짜 교수로 부임했다.

 

▲ 총동문바둑대회 현장


 

모두가 부러워하는 한양기우회

 

나의 대학 생활에서 특별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하나 있다. 대학에 다닐 때 만들었던 ‘한양기우회’라는 동아리 모임이다. 이 동아리의 회원들이 졸업 후 한양(OB)기우회를 만들었다. OB기우회는 대학의 바둑동아리에 장학금을 주고 행사도 후원한다. 이 기우회는 지금까지 35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 수년 전 서울대를 비롯한 다른 대학교 바둑 동호인들이 한양대 기우회를 부러워해 벤치마킹했다.
한양기우회의 탄생은 내 생각에서 비롯됐다. 1980년께 학교에 다닐 때 나는 한양대에 기우회가 없는 것을 아쉽게 생각했다. 그래서 교내에 기우회를 하나 만들었으면 했다. 그러던 차에 같은 영어영문학과 2년 후배인 이일환 동문과 우연히 바둑 얘기를 하게 됐다. 당시 전체 학생회 간부였던 이일환 동문은 매우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훗날 고위 공무원으로 활약했다. 내가 기우회를 만들면 어떻겠냐고 하자 그는 즉시 찬성했다. 그리고는 기우회 소집 안내문을 만들어 벽보판에 붙였다. 기우회 창립을 위한 대망의 발기모임이 교내 노천극장에서 열렸다. 몇 명이나 올지 가슴을 졸였는데, 예상 외로 많은 인원이 참석했다. 그때 멋진 비전을 선언하며 한양대 기우회를 발족시켰다.
바둑계 사람들에 의하면 한양기우회는 특별한 점이 있다고 한다. 회원들 간에 우애가 깊고 분위기가 매우 좋다는 것이다. 회원들은 대학연맹전 출전 같은 문제에서는 양보의 미덕을 발휘하지만, 식사 때는 서로 식대를 내려고 한단다. 유머 있는 해설로 유명한 ‘바둑계의 김구라’ 김성룡 9단도 한양기우회를 좋아한다. 이 기우회에서 만나 부부가 된 커플도 몇 쌍 있다.
한양기우회의 이런 인간적인 분위기에는 역대 회장들이 많은 기여를 했다. 강병두, 이원옥, 한태완 동문 등 여러 회장들이 애정을 갖고 기우회를 이끌었다. 여성 회장이었던 원영숙 동문은 기우회에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해 바둑계에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현재는 박승자 회장이 맡아 한양동문 바둑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주관한다. 기우회에서는 바둑 모임뿐만 아니라 체육 행사와 엠티(MT) 같은 프로그램도 개최한다. 근래에는 한양대 총동문회와 협력해 동문 바둑대회를 여러 차례 개최해오고 있다. 한양대의 색다른 자랑거리인 한양기우회가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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