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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4 기획 >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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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소설이 만들어진 자리

편혜영(소설가·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국어국문학과 졸업)

사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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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HFvW

내용
인문대로 향하는 138개의 계단 중 마지막 네 개의 계단을 남겨두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면 좁은 샛길이 나온다. 중앙도서관 쪽으로 난 좁은 흙길이다. 습관처럼 인문대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섰다가 중앙도서관에 가야 할일이 뒤늦게 생각나거나 제2공학관에 수업이 있는 걸 깨닫고 난감해질 때 계단을 다 올라서지 않아도 지름길로빠질 수 있는 셈이다. 그래봤자 거의 다 올라온 셈이어서 굳이 그 길로 다니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편혜영(소설가·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국어국문학과 졸업)



사방이 고요한 좁은 흙길


길에는 드문드문 긴 나무의자 세 개가 놓여 있었다. 사람들이 머문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진 의자로, 나뭇결이 갈라져 잔가지가 도드라진 탓에 함부로 만지면 가시가 박히기 십상이고, 어두운 색의 옷을 입고 앉았다 일어서면 페인트 부스러기가 잔뜩 묻어나곤 했다.
볕이 좋은 날이면 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누군가와 수다를 떨기도 했지만, 대개는 혼자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냈다. 춥지 않은 바람이 일정한 방향으로 불고 발끝이 바닥에 닿을 때면 가볍게 흙먼지가 일었다가 금세 가라앉고 수업이 시작되어 모두 교실로 몰려갔는지 사방이 고요한 속에 홀로 있으면 당연히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 마련이고, 생각이 고이면 언제나 그렇듯 소설이 쓰고 싶어졌다.
간혹 인문대에서 사범대, 중앙도서관으로 이어지는 큰길을 지나가는 사람들 때문에 소란스러워졌지만 그 길의 소음은 금세 고요 속으로 스며들어버렸다. 학교 내에서 그렇게 묵묵한 곳은 드물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연신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지만, 조용하고 고요한 소란스러움이었다.
딱딱한 나무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소설을 쓰다가 마음 내키면 쓰고 있는 소설을 읽거나 쓰다만 소설의 뒷부분을 조금씩 이어 써나갔다. 그곳에 앉아 있다고 해서 놀랄 만큼 일이 잘되거나 수월히 써지는 법은 결코 없었다. 그럼에도 소설이라는 것은 세상과 그다지 멀지 않은 자리에서 세상으로부터 멀어진 기분이 들어야 겨우 조금 쓸 수 있다는 걸 실감했다.



언제나 여전한 인문대 복사실


운 나쁘게도 의자는 셋뿐이어서 누군가 차지하고 있을 때가 더 많았다. 그런 날이면 주저하지 않고 인문대로 갔다. 인문대 지하 계단을 내려서면 가장 먼저 복사실이 보였다. 그곳은 언제나 문이 열려 있고 무료한 표정의 아저씨가 턱을 괴고 앉아 어두운 계단참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사실 복사실 아저씨는 계단참에 무료한 시선을 둘 때보다 복사기 앞에 서 있거나 제본기 앞에서 분주히 손을 놀리고 있을 때가 많았다. 아저씨의 얼굴은 자주 보고 몰래 훔쳐보기도 했지만 잘 기억할 수 없었는데, 그건 아저씨가 얼굴 정면을 내보일 때보다 일정한 속도로 뿜어내는 복사기의 빛 속에서 살짝 얼굴을 드러냈다가 감추는 때가 많아서였다.
누군가 인문대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을 꼽으라면(그러나 아무도 이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나는 주저 없이 복사실이라고 할 작정이었다. 좋아하는 장소라고 해서 특별한 용무 없이 복사실 앞을 서성이거나 무턱대고 들어가서 구경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나는 주로 복사실 앞 휴게실에 앉아 그곳을 조금씩 훔쳐보는 쪽을 택했다.
휴게실은 오래된 기원을 연상시키는 소파와 테이블이 늘어서 있었는데, 언제나 시끄러웠다. 수업이 없고 딱히 갈 곳을 찾지 못한 인문대 학생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 거기였다. 지하에는 연극영화학과 학생들의 연습실이 있어서 목청 높인 연습생의 소리도 들려왔다.
휴게실 안쪽에는 인문대 도서관이 있었다. 지하여서 습하고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는데, 몇몇 선배들은 제집처럼 종이 파일로 벽을 쌓아놓고 고개를 수그리고 책을 들여다보았다. 어깨를 잔뜩 웅크린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 더 추워졌다. 그래서인지 한기 도는 불안한 도서관보다 복사기 빛이 늘 은은히 끊이지 않는 복사실을 보고 있는 게 더 마음 편했다.
나는 휴게실에 앉아 자주 복사실을 힐끔거렸다. 정확히 말하면 복사실을 들여다보기 위해 휴게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복사실 아저씨가 쉬는 시간에, 문을 닫는 점심시간에 어디에서 머물지, 어떤 식사를 할지, 무슨 이야기에 관심이 있을지, 자신이 복사하는 학술서나 원서를 간혹 읽기도 할지, 똑같은 내용의 문장들을 계속 들여다보면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했지만 그보다는 경외심이 더 컸다. 소란스러운 가운데 누군가는 주어진 일을 하고 언제나 꾸준하고 세상과 관계없이 뭔가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사람들 앞에 물건으로 만들어 내놓는다는 게 경이로웠다.
복사실 아저씨는 말하자면 언제나 그곳에 있는 사람이었다. 아담하고 흐트러져 보이지만 질서정연하게 물건이 배치되고 종이와 글자와 문장이 마구 쌓인 그곳에. 성장한다는 것은, 사회인으로 자립한다는 것은 아저씨처럼 정착할 공간이 생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소설을 쓴다는 것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학교를 졸업하고 다행히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여덟 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러는 동안 깨달은 것은 소설을 쓰는 일은 무척이나 숙련도가 낮다는 것이다. 새로 소설을 시작할 때마다 길을 잃은 기분이 든다.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인물은 어떻게 구체화하는지, 매번 처음인 듯 서툴기만 하다. 그렇게 겨우 소설을 완성하고 나서는 소설을 쓰는 일이 매번 같은 강도의 노동을 되풀이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소설을 쓴다는 것이 인적 드문 샛길의 의자와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세상 속에서 고요하게 자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무엇이든 쓸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복사하는 일과도 같은지 모른다. 세상이라는 책과 인간이라는 자료집을 들고 그것에 얼마간 빛을 쪼여 베껴내는 일 말이다. 물론 복사한다고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그렇다. 복사광을 쬔다고 한 편의 소설이 순식간에 완성될 리도 없다.
말하자면 이것은 고요와 항상성에 대한 비유라고 말할 수 있다. 많은 것이 달라진다. 아예 사라지기도 한다. 모양이나 용도가 이전과 전혀 달라지기도 한다. 변함없이 시간이 그렇게 만든다. 그럼에도 어떤 것은 그대로 남는다. 변하지 않는 것, 고요한 것을 바라보면 마치 삶을 대할 때 그런 것처럼 뭉클해진다. 지금은 사라진 의자와 지금도 여전한 복사실이 내게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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