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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0 기획 >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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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단어에 혹하지 말라, 그건 젊음이 아니다

영포티에 대한 불만

이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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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gLjQ

내용

세대에 대한 정의. 베이비붐세대, 386 혹은 486세대, X세대. 비슷한 세대로 비슷한 정치적/사회적 상황을 접한 이들을 키워드로 묶는 시도는 과거부터 있어왔다. 주로 한 분야의 전문가나 유명한 평론가가 이를 언급하면 언론에서 이를 인용하는 방식으로 단어들은 퍼졌다. 그 과정에서 단어는 힘을 얻어 고유명사에서 일반명사가 되거나 반대로 힘을 잃고 스스로가 아는 이들만 아는 특정 시대의 은어가 되곤 한다.

최근 급작스레 나타나 긍정과 부정 양 방향으로 뜨거운 단어가 있다. '영포티(Young+Forty)', 어린 40대란 뜻이다. 40대에 대한 자발적인 긍정이 담겨있던 명명법은 스스로를 누가 띄워주기를 원하던 또다른 40대들에 의해 엄청난 사용빈도를 보이고 있다. 신조어에도 인용지수(IF)가 있었다면 아마 올해의 인용지수 1위를 기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단어는 그 이용량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영포티란 단어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과감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자기 자랑에 불과한데?
 
사실 영포티는 시작부터 불안정한 단어였다. 과거 IMF 직후 모 은행의 “부자되세요~”만큼이나 마케팅적인 요소로 가득하다. 언론에 처음 영포티를 등장시킨 기사는 작년 초 한국일보에 게재된 <한국사회 변화의 열쇠 ‘영포티(Young Forty)’>라는 기사다. 여기서 기자는 김용섭 소장(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을 만나 “그 나이가 되면 당연히 해야 하는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이어받지 않고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낸 첫 중년 세대”라는 해석과 함께 현 40대가 영포티라고 명명했다. 기사를 쓴 기자 본인과 김 소장이 40대라는 점은 그냥 웃고 넘어가자.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 그들이 이전까지의 40대와 자칭 ‘영포티’를 분류하는 기준이다. 구체적으로는 다음의 여섯 가지가 ‘영포티의 특징’이다.
 
① 내 집 마련에 집착하지 않는다.
② 보수냐 진보냐의 이념보다 합리와 상식을 우선시한다.
③ 결혼, 출산에 대한 관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④ 현재에 충실하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거나 희생하지 않으며, 일보다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원한다.
⑤ 형식과 허울, 체면치레 같은 허식을 내려놓는다.
⑥ 트렌드에 민감하다. 왕성한 소비자이자 새로운 것에 대한 수용 능력이 높다.

특징일지 바람일지 모르겠다. 특히 6번의 경우, 꽤 씁쓸한 구석이 있다. 왕성한 소비자는 거저 생겨나지 않는다. 소비를 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물론 돈이 있어도 소비를 자제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돈이 없어서 왕성한 소비를 하지 못한다.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비단 소비뿐만 아니다. 형식과 허울, 체면치레 같은 허식은 그 사람의 삶에서 배운 결과이기도 하다. 한평생 권위주의 속에서 살아온 이들에게 갑자기 ‘권위는 허상일 뿐이다’라고 말하면 선뜻 받아들이겠는가? 일보다는 가족을 택하는 것 또한 야근에 찌든 이들에게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결국 영포티의 특징이라 소개한 내용은 곧 ‘나는 이런 것을 누리고 있어’라는 자기 자랑 서사에 지나지 않는다. 세대를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거 안어울려요”
 
더 큰 논란은 이 자가자랑 서사에 ‘아재’들이 몰입하면서 생겼다. 애초 시작부터 마케팅 혹은 자기 과시용 소지가 다분했던 영포티는 ‘나도 영포티야!’라 말하는 자신감 넘치는 이들 덕에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어리고 싶은 욕망이야 이해가 간다. '늙지 않으려는 욕구'는 지극히 보편적이다. 필자 주변에 흔한 20대들도 자신보다 어린 이들에게 부러움을 느낀다. 20대 후반은 20대 초반에게, 20대 초반은 10대에게. 돌이켜보면 고등학생 때는 중학생을 부러워했으니 이는 모든 인간의 후회가 담긴 바람일 게다.
 
그럼에도 자칭 영포티는 전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세대로 남아있다. 20대, 30대에게 영포티라는 말은 그저 웃어넘기기엔 조금 불편하다. 우리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N포세대라는 말을 들어왔다. 연애, 결혼, 출산 세가지를 포기하면 삼포세대, 취업과 내 집 마련까지 포함하면 오포세대 등 여러 가지를 포기한 세대라는 표현이다. 비교해보면 재밌다. 영포티와 N포세대 모두 내 집 마련을 포기했지만, 그 설명은 다르다. 영포티에 한정해 내 집 마련은 ‘더 이상 제태크 수단이 아니’기에 포기한 행위다. N포세대에게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해서 포기해야 하는’ 행위다. 요즘말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나 할까.
 
▲'영포티(Young Forty)'. 관념 저항 의지로 가득찬 시대 정신같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실상은 세대를 다 아우르지 못하는 형용 모순의 언어일 뿐이다.

결국은 최근 활발한 꼰대 담론으로 회귀한다. 나는 될 대로 하겠다. 나 정도면 괜찮은, 젊은이 아니냐. 물론 그 와중에도 나이차로 발생한 권력 구도는 유지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래서일까, 영포티에 대한 불만은 젊은 이성에게 들이대는 40대에 대한 불만과도 겹쳐진다. “나도 어린데 왜 안만나줘, 나 돈 많아”도 영포티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행태다.
 
앞서의 반복이지만 영포티라는 정체성에는 ‘안정적이고 적당히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사무직’이란 의미도 내포돼 있다. 20대와 30대 때 젊음을 혹사한 적 없는 이들. 그래서 오늘도 근근히 살아가는 40대 비정규직에게, 영포티는 더 잔인하다. 여성이 배제되어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최근 대중문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나이든 남성과 젊은 여성과의 사랑 내러티브가 그 일환이다. 중년 남성의 '젊은 삶'을 위해 여성이 대상화 되는 셈이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과로사 인구가 제일 많고 퇴직을 걱정하기 시작하는 것이 대한민국 40대의 현실이다. 물리적으로도 젊음과는 거리가 먼 이들을 급작스레 호명한 것은 인구 분포와 사회 경제적 주권 계층에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때 '신세대'라는 별칭을 부여받으며 급격히 민주화된 사회 속에서 번영을 누려왔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비추어 봤을 때 '영포티'를 진심으로 내재할만한 40대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평범한 마케팅이고 일상적인 프레이밍이다. 정말 젊은 합리를 지니고 있다면 여기에 호도되어서는 곤란하다.

자칭 영포티에겐 조소를, 명칭조차 없는 이들에겐 위로를.


글/ 이상호 기자        ta4tsg@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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