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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31 기획 >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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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아름다운 시간 속 추억의 편린들

이순임(소설가/㈜램프웨이 대표·국어국문학과 85) 동문의 에세이

사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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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9k9I

내용
몇 해 전 일이다. 한양대학교병원을 찾게 된 것은 대학 동창이 내게 전한 부고 때문이었다. 학교 다닐 때 시인이셨던 교수님의 부인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선약이 잡혀 있긴 했지만 약속을 취소하고 강변북로로 핸들을 꺾었다. 그런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만나게 될 친구들과 졸업 후 한 번도 찾지 않은 학교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했다.

이순임(소설가/㈜램프웨이 대표·국어국문학과 85)
 
▲1988년 팰리스호텔에서 열린 사은회 때의 모습(출처: 이순임 동문)



문득 떠오른 졸업식 날의 풍경


한양대역 근처에 이를 무렵, 문득 졸업식 날이 떠올랐다. 엄마는 새로 맞춘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셨고 은빛 스팽글이 달린 토트백을 드셨다. 그런데 전철 안은 사람들로 미어터졌고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인파에 밀려 엄마는 맨 아래 계단까지 어떻게 내려왔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지갑이 없어진 걸 알게 된 것은 우왕좌왕 식을 마치고 사진을 찍은 다음이었다. 엄마 안색은 순식간에 달라지셨다. 그제야 엄마는 계단 내리막에서 누군가 툭, 치고 지나간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부모님은 무슨 이유에선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진관에 들러 나란히 독사진을 찍으셨다. 그때 찍은 사진이 엄마의 영정사진이 됐고, 기일이 돌아올 때마다 나는 한복 입은 엄마를 보게 된다. 30년 전 소매치기를 당하고 마음이 상해 있던 엄마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은 역에서 곧바로 갈 수 있도록 학교까지 통로가 이어져 있다고 들었다. 그때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30년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다


나는 천천히 차의 속도를 낮추면서 교문을 찾아보았다. 둘이었던 교문이 언제 없어졌는지 하나만 남아 있었다. 정확하게
▲ 2학년 때 협궤열차 앞에서 국문과 친구들과 추억을 남
겼다. (출처: 이순임 동문)
어느 쪽에 있었는지 구분이 안 됐다. 뒤이어 내 눈을 의심했다. 빼곡하게 들어선 학교의 신축 건물들이 하나둘 모습을 나타냈다. 나는 아예 차를 정차시키고 차창 문을 열어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옛날의 그 학교가 아닌 것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 하는 기분이 들었다. 1985년에 타임머신을 타고 간 2015년 미래에 대한 이야기. 불현듯 <백 투 더 퓨처 2>란 영화가 떠올랐다. 나 역시 85년도 새내기 대학 생활을 함께했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어언 30년의 시간을 영화처럼 거꾸로 돌리고 있었으니 맞추기라도 한 듯, 시간의 간극이 일치했다. 나는 이미 지난 시간 속에 묻혀 있었다. 촌스런 펌에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이었던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들을 만나면 어깨동무를 하고 겅중겅중 뛰어보다가 지치면 오래도록 포옹하고 싶었다. 그리고 아직도 심장이 뜨겁게 뛰는지 하하호호 웃고도 싶었다. 마음은 벌써 장례식장에 닿기도 전에 저만큼 앞서 가고 있었다.

 

과거의 한 순간으로 나를 이끈 힘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걷는 것을 유난히 싫어한다. 1985년 신입생 합격자 발표를 보기 위해 나는 정문에서부터 힘겹게 언덕을 올랐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는 합격자 명단이 대운동장에 붙여져 있었다. 어렵게 물어 찾아갔던 그 넓은 운동장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30여 년 전 겨울, 외투에 손을 넣은 채 운동장을 걷는 나의 뒷모습이 그려졌다. 합격자 명
▲ 학과 친구들과 함께 인천항에서 찰칵!(출처: 이순임
동문)
단 공고문 앞에서 수험번호를 발견하고 안도했던 나. 물론 나는 ERICA캠퍼스가 더 친숙했다. 바람이 많고 허허벌판이었던 안산은 지금 아무리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옛날의 바람을 만날 수 없으리라. 친구들과 수원과 인천을 오가는 협궤열차를 탄 적도 있다. 어떻게 해서 그 많은 인원이 열차를 타고 인천항에 가게 됐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무엇이 과거의 한 순간으로 나를 이끌었을까. 벌써 학교를 졸업한 지 30년이 다 되어간다. 나도 이제 나이가 먹을 만큼 먹은 셈이다. 묵은 짐을 정리하다가 아이들의 어릴 적 앨범을 펼쳐 보게 됐다. 그 가운데 사진 한 장이 유난히 내 마음을 붙들고 놓아주질 않았다. 사진 속의 두 아들은 볼우물이 파일 만큼 헤벌쭉 웃고 있었다. 특히 눈이 좀 큰 편인 작은애의 까만 눈동자가 조명처럼 빛났다. 게다가 조막만한 양 주먹은 오므리고 두 팔은 가슴께까지 가 있었다. 보면 볼수록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나는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작동시켜 사진을 옮겨두었다. 한동안 매일 아침 사진을 보고 하루를 시작했다. 아름다운 장면은 기억을 불러내는 한, 현재에도 미래에도 늘 살아있기 마련이다.

 

살아있기에 만날 수 있었던


그새 어둠이 내렸고 장례식장이 어디에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도대체 모르겠군. 천천히 차를 몰며 혼잣말을 하고 있을 때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국문과였던 친구들이 많이 와 있는데 언제 도착하느냐는 물음이었다. 하긴 그 친구를 만나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대뜸 한다는 말이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였다. 나는 그 말을 오래도록 곱씹었다.

살아있다는 것은 매우 신비로운 일이다. 장례식장에 가는 동안 나는 과거라 말하는 시간 속에서 추억의 편린들을 꺼냈었다. 모두 살아있는 기억들이었다. 30여 년 전에 비해 많이 달라진 학교 전경이야말로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강렬하게 깨닫게 해 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장례식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살아있기 때문에 우리는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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