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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7 기획 > 오피니언 > 매거진 중요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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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의미가 있다

임병희(<목수의 인문학> 저자, 국문학과 91)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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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32NB

내용
왕십리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나는 30분 일찍 한양대역으로 가고 있다. 학교에 한 번 올라가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갑자기 너털웃음이 나왔다. ‘올라간다니’ 말이다. 그랬다. 다른 학교는 간다고 했지만 우리는 학교에 올라간다고 했다.

임병희(<목수의 인문학> 저자・국문학과 91)

 

한양대역 2번 출구

 

   
▲ 91학번 친구들을 처음 만난 자리, 인문대 오리엔테이션(1991. 2. 24)

 

어디로 가든 학교는 올라가야 했다. 특히 국문학과가 있는 인문대는 더욱 심했다. 정문으로 가면 진사로를 올라야 했고, 진사로를 오르면 다시 138계단을 올라야 했다. 왕십리역에 내려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병원 후문을 향하든, 샛길로 나 있는 옹달샘 방향으로 가든 계단과 언덕은 피할 수 없었다.

 

한양대역, 젊은 청춘들과 함께 지하철에서 내린다. 싱그럽다. 잠시 동선을 그려본다. 학교를 한 번 돌아보려면 뚝섬 방향으로 나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공대 후문으로 들어가 노천강당에 잠깐 앉았다가 사범대를 거쳐 인문대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웬걸, 한양대역에 내려 보니 없던 입구가 하나 있다.

 

그렇구나. 그 입구가 뚫렸구나. 학교를 다니다 보면 몇 가지 바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내가 다니던 남자고등학교에는 매년 근처의 여고와 합쳐져 남녀공학이 된다는 전설이 떠돌았다. 물론 근거 없는 남고생들의 소원일 뿐이다. 대학에 다닐 때도 그런 것이 있었다. 왕십리역 계단에 에스컬레이터가 생긴다거나 한양대역에서 학생회관이 있는 한마당 쪽으로 바로 나갈 수 있는 입구가 뚫린다거나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입구가 정말로 생긴 것이다. 첫 번째 충격이었다.

 

씁쓸한 듯 흐뭇한 학교의 변화

 

나는 동선을 수정했다. 학생회관 쪽으로 나가 본관을 돌아 노천강당으로 가기로 말이다. 그런데 가슴이 조금 두근댄다. ‘또 어떤 변화가 기다리고 있을까?’ 그 변화가 씁쓸할지 흐뭇할지는 아직 몰랐다. 어쩌면 씁쓸하면서 흐뭇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입구로 가니 몇 계단 오르지도 않았는데 학교에 도착했다. 마치 축지법을 써서 진사로를 건너뛰고 온 기분이다. 아, 그런데 모르는 건물이 보인다. 쌉싸름하다. 그래도 고딕스러운 본관은 여전했다.

 

노천강당이 보인다. 이곳은 아마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세 번째로 술을 많이 마신 장소일 것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우리는 꽃에 모여든 꿀벌처럼 노천강당의 양지를 찾았다. 새우깡 한 봉지, 소주와 맥주 몇 병을 들고 전공서적을 깔고 앉아 아직 가시지 않은 추위에 몸을 부르르 떨며 잔을 채우고 비웠다. 비가 오는 날이면 계단 밑에 들어가 마셨고, 날이 좋은 날이면 퍼질러 앉아서 마셨다. 그런데 이 좋은 봄날에 노천강당은 비어 있었다. 아니 사람이 없다는 게 아니다. 술 마시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이건 새로 생긴 한양대역 입구보다 더 충격적이다. 그래도 잠시 앉았다. 나는 추억이라도 마셔야 했으니까.

 

사라진 것들에 대한 그리움

 

   
▲ 138계단에서 동기들과 함께(1991. 7. 24)

 

드디어 인문대에 도착했다. 고개를 갸웃한다. 내가 알던 인문대가 이렇게 좋은 건물이었나 싶다. 2층 베란다도 완전히 달라져있다. 왠지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인문대 앞마당도 한참이나 좁아진 느낌이다. 예전에는 네트를 만들어 족구도 자주 했었는데, 이제는 족구도 잘 안하는 것 같다. 자꾸 쓴웃음이 난다. ‘이런 생각을 하면 꼰대라고 하던데’ 뭐 어쩔 수 없다. 생각이 나는 걸 어찌하겠는가?

 

마치 이방인처럼 인문대를 스쳐 138계단으로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계단이 나무다. 계단 양쪽에는 가로등도 있다. 문명화된 세상을 처음 보는 산골 촌뜨기가 된 기분이다. ‘그래, 많이도 달라졌구나.’ 시간이 흘러 나도 달라지고, 세상도 달라졌는데, 모든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고 살았는데, 마음속에서 나는 옛날 학교의 모습을 부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왕십리 술집에서 친구를 만나 술을 마셨다. 우리는 새로 생긴 것보다 없어진 것들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닭개장과 술국에 한 수저씩 조미료를 넣어 주던, 지금은 사라진 ‘부귀집’과 오돌뼈, 닭똥집에 소주병 쌓아가던 ‘마기집’도 이야기했다. 천 원짜리 몇 장으로 떡볶이와 순대를 양껏 먹을 수 있었던 시장통 화천 아주머니집도 빠지지 않았다.

 

언제 다시 오르려나

 

   
▲ 국문학과 MT 캠프파이어(1991. 10. 24)

 

지금도 누군가를 만날 때면 자주 하는 소개말이 있다. 특히 같은 대학 출신을 만날 때 그렇다. 대신 소개를 해 주어도, 스스로 이야기를 해도 “한양대 국문과 91학번”이라고 말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

 

지금은 가구를 만들며 글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한양대 국문과 91학번’이다. 그 속에 녹아 있는 건 단순히 학교와 입학년도가 아니다. 내가 청춘을 어디에서 어떻게 보냈는지를 말해 주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이며 경험이고 또한 지금의 나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진행형의 시간과 공간이다.

 

학교는 많이 좋아졌다. 그런데 나는 예전이 그립다. 그건 어쩌면 청춘의 내가 그리운 것인지도 모른다. 학교에 가 본 후, 또 많은 시간이 흘렀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20대 를 보낸 그곳으로 한양대를 기억한다.

 

시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간 곳, 친구들을 만난 곳, 셀 수 없는 술잔을 기울이며 개똥철학과 인생과 사회를 이야기하며 분노하고 웃고 떠들던 곳, 사실 한양대는 학교라는 공간에만 있지 않다. 술에 취해 친구가 데려간 왕십리의 하숙집, 배낭 하나 짊어지고 떠났던 여행지, 138계단을 내려갈 때 느닷없이 달려와 어깨동무를 하던 친구, 그 모든 것이 한양대이다. 나는 다시 학교를 오르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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