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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 01

[오피니언][사랑한대] 정민 교수, 우리가 독서를 해야하는 이유

독서의 이유 독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삶의 통찰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밑거름이었다. 그리고 인터넷과 AI로 대변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러하다. ‘독서의 힘으로 현실을 꿰뚫다!’를 연간 테마로, 책과 독서에 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는 우리가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다. 내 마음속의 태평성대 정보는 홍수처럼 밀려들고, 잠깐만 한눈을 팔아도 대열에서 낙오해 엉뚱한데 와 있을 것만 같다. 나날은 방향 없이 등 떠밀려 떠내려간다. 여기가 어딘지,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는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나날은 점점 더 불안해지고, 일상은 아슬아슬한 곡예다. 바빠도 정신줄까지 놓으면 안 되는데, 마음에 중심이 사라지자, 몸의 종이 되어 허둥지둥 허겁지겁의 연속이다. 바빠 죽겠는데 바쁜 이유를 모르겠다. 늘 불안을 달고 산다. 답은 책 속에 다 들어 있건만, 책을 멀리하고, 생각을 거부하면서 생긴 폐해다. 고려 때 이곡(李穀, 1298~1351)이 지은 「남을 대신하여 중시 사예에게 답하다(代書答仲始司藝)」란 시다. 화와 복은 언제나 마주 보는 법 禍福常相對 은혜 원수 둘 다 모두 잊어야 하리. 恩讎要兩忘 남촌에서 책을 읽던 바로 그곳이 南村讀書處 다름 아닌 희황(羲黃)의 시절이었네. 便是一羲黃 4구의 희황(羲黃)은 고대의 이상적 제왕인 복희(伏羲)와 황제(黃帝)다. 이상적인 태평 시대의 뜻으로 쓴다. 지금 하는 이 일이 내게 복이 될지 화가 될지 가늠 못 할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어제의 원수가 오늘은 은인이 되고, 오늘의 은인은 내일 다시 원수로 돌아선다. 여기에는 원칙도 기준도 없고, 단지 이익과 손해의 잣대만 있을 뿐이다. 시인은 말한다. “벗이여! 어떤가? 우리 예전 남촌의 서당에서 코흘리개로 책 읽던 그때는 이런 생각 없었지. 서로 안 지려고 목청을 높이고, 하나라도 더 외우려고 밤잠 아껴가며 책 읽던 그때를 기억하는가? 내 마음속의 태평성대는 그때밖에는 없었던 듯하이. 그만 털어버리세. 책 읽던 그때의 그 시간과 공간 속으로 돌아가 보세나.” 중시(仲始) 김대경(金臺卿)과 시인의 벗은 함께 글을 읽은 동무였는데, 이해가 엇갈려 서로 간에 문제가 생겼던 모양이다. 둘 사이에 화해를 붙이려고 친구의 입장에서 대신 써준 시다. 둘은 이 시를 통해 화해할 수 있었을까? 소원해진 두 벗을 다시 묶어주는 것은 독서의 시간이다. 그것은 화복도 없고 은원(恩怨)도 없는 순수한 결정(結晶)의 시간이다. 책은 왜 읽는가? 허균(許筠, 1569~1618)의 『한정록(閒情錄)』에 「정업(靜業)」의 항목이 있다. 정업, 즉 고요히 하는 사업이란 바로 독서를 말한다. 책에 실린 독서에 관한 격언 몇 항목을 소개하겠다. “책으로 이 마음을 붙든다. 한때라도 내려놓으면 한때의 덕성이 해이해진다. 책을 읽으면 이 마음이 항상 있지만, 책을 읽지 않으면 끝내 바른 이치를 보고도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書以維持此心. 一時放下, 則一時德性有懈. 讀書則此心常在, 不讀書則終 看義理不見.)” 송나라 때 학자 장횡거(張橫渠)의 말이다. 내게서 내 마음이 달아나지 않도록 붙들어 매주는 것은 책이다. 책과 함께 할 때, 나는 나의 주인으로 살고, 책을 손에서 놓는 순간 나는 바른길을 보고도 그것을 보지 못하는 허깨비 인생이 되고 만다. 다음은 안지추( 之推)가 『안씨가훈(顔氏家訓)』에서 한 말이다. “많은 재물을 쌓아두 는 것이 얕은 기술을 몸에 지니는 것만 못하다. 기술 중에 배우기는 쉽지만 아주 소중한 것으로 독서만 한 것이 없다. 세상 사람은 어진이든 어리석은 이든 모두 아는 사람이 많고 경험한 일이 폭넓어지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책을 읽으려 들지는 않는다. 이것은 배부르기를 구하면서 밥 짓기를 게을리하고, 따뜻해지려 하면서 옷 만들기에 나태한 것과 같다. (積財千萬, 不如薄伎在身. 伎之易習, 而可貴者, 莫如讀書. 世人不問賢愚, 皆欲識人之多, 見事之廣, 而不肯讀書, 是猶求飽而懶營饌, 欲煖而惰裁衣也.)” 쌓아둔 재물은 쓰기 바쁘지만, 독서의 습관은 재물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 많은 사람을 만나 인맥을 만들고 싶은가? 세상 끝까지 가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은가? 직접 가지 않아도 책 속에 사람이 있고, 책 속에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가 있다. 꿈만 꾸고 행동에 옮기려고 들지는 않으니, 쌓아둔 재물이 다 축이 나도록, 일상의 허기와 추위가 가시지를 않는다. 안지추는 이런 말도 했다. “독서가 설령 큰 성취를 줄 수 없다 해도 오히려 한 가지 기예로 이를 얻어 자신의 밑천으로 삼을 만하다. 부형(父兄)은 언제까지 기댈 수 없고, 고향과 나라도 나를 항상 지켜줄 수가 없다. 하루아침에 이리저리 떠돌게 되어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때는 마땅히 자신에게서 직접 구해야 한다. (讀書縱不能大成就, 猶爲一藝, 得以自資. 父兄不可常依, 鄕國不可常保. 一旦流離, 無人庇蔭, 當自救諸身耳.)” 도움의 손길이 끊어진 자리, 내 스스로 대답을 찾아야 할 때, 나의 든든한 밑천이 되어줄 것은 독서의 힘밖에 없다는 얘기다. 책은 어떻게 읽을까? 1년에 몇백 권을 읽겠다는 목표를 세워, 목표만을 위해 달려가는 독서는 재앙에 가깝다. 충족되는 것은 나는 책을 읽고 있다는 자기만족뿐, 내면에 고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설선(薛瑄)이 말했다. “독서는 차분히 고요하게, 느긋하고 천천히, 꼼꼼하고 자세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마음이 책 속으로 들어가서 묘미를 얻을 수가 있다. 만약 조급하고 어지럽게, 편협하고 바쁘게 건성으로 대략 읽는다면, 이른바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음식을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하는 지경이 되고 만다. 어찌 족히 그 묘미를 얻을 수 있겠는가? (讀書惟寧靜寬徐縝密, 則心入其中, 而可得其妙. 若躁擾急, 略以求之, 所謂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者也. 焉足以得其妙乎.)” 바빠 죽겠는데 어떻게 차분하고 고요해지며, 느긋하고 천천히 읽을 시간이 있느냐고 말하면 피차에 답답하다. 마음이 깃들면 복잡한 전철 속도 태고의 적막과 같고, 마음이 달아나면 심심산중도 저잣거리와 한가지다. 소동파는 젊은 청년 왕랑(王)에게 건넨 편지에서 독서의 방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젊어서 배우는 사람은 한 권의 책을 여러 차례 읽어야 한다. 바다에 들어가면 온갖 물건이 다 있지만 사람의 정력으로 능히 다 가져올 수가 없어, 그저 갖고 싶은 것만 얻고 마는 것과 같다. 그래서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은 매번 한 가지 뜻을 가지고 구해야만 한다. 고금의 흥망치란이나 성현(聖賢)의 작용을 구하려면, 단지 이 뜻만 가지고 구해야지 다른 마음을 먹어서는 안 된다. 어떤 일의 정보나 문물에 대해 알고 싶으면 또한 이렇게 한다. 배움이 이루어지면 팔면에서 적을 받더라도 그저 섭렵만 한 사람과는 한 몫에 얘기할 수가 없다.(少年爲學者, 每一書皆作數次讀. 當如入海, 百貨皆有. 人之精力, 不能盡取. 但得其所欲求者耳. 故願學者, 每次作一意求之. 如欲求古今興亡治亂聖賢作用, 且只作此意求之, 勿生餘念. 求事迹文物之類, 亦如之. 若學成, 八面受敵, 與涉獵者, 不可同日而語.)” 몰입해서 집중하는 독서의 위력을 말했다. 1년에 몇백 권을 읽어 치운 것은 자랑이 아니다. 차곡차곡 쌓여서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독서의 힘이 내면에 쌓일 때, 팔면에서 날아드는 적의 공격에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가 있다. 명창정궤(明窓淨)! 볕 잘 드는 창 아래 정갈한 책상 앞에서 책을 펴고 태고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보자! 글 정민 교수(국어국문학과) 정민 교수는? 정민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다산 정약용 연구의 권위자이자 새로운 시각으로 고전 속의 지혜를 전하는 지식인이다. 혜안을 넓히는 독서와 글쓰기에 관한 강연과 저서 활동도 펼치고 있다.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사랑한대'의 2020년 봄호(통권 제253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 사랑한대 2020년 봄호(통권 제253호) 보러가기

2020-03 01

[오피니언][사랑한대] 건강인사이트, 코로나19로 보는 감염병 전파와 예방

최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불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모두가 불안하고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는 지난해 12월 발생한 중국 우한 지역 폐렴의 원인 바이러스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의심환자와 확진자가 발생해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로나19의 전파 특성과 함께 감염병 예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코로나19의 전파 특성은?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코로나19’의 전파력은 실제 전파력이 비슷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스’보다 높지 않다. 감염자 1인당 평균적으로 전염시킬 수 있는 인원수를 의미하는 R0값의 경우 사스가 3 내외지만, 코로나19는 2.2 내외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감염증을 조기에 인지할 수 있는 증상 발현 이전부터 바이러스가 전파되기 때문에, 실제로 바이러스 전파 방지를 위한 효율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있다. 정확한 전파 경로에 대해서는 더 연구가 필요하지만 다른 코로나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비말(침방울)로 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기를 통해 전파된다고 착각하기 쉬운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공기 전파 감염증의 경우 바이러스 입자가 작아서 공기 중에 부유하며 상대적으로 먼 위치의 사람까지 감염시킬 수 있다. 반면 비말 감염증의 경우 바이러스 입자가 상대적으로 커서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주변에 툭툭 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환자가 세게 기침을 해도 2m 이상 날아가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 이상의 거리에서는 감염증 발생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볼 수 있다. 대변에서 바이러스가 확인됐다는 연구가 발표돼 분변을 통한 전파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데 실제로 이를 통한 전파가 일어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코로나19의 잠복기는? 현재까지 알려진 자료에 의하면 코로나19의 잠복기는 최소 2일에서 최대 14일, 평균 약 5.2일로 추정할 수 있다. 노출된 바이러스의 양이 많고 노출된 시간이 길수록 실제 감염증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동일한 공간에 있는 사람 중 일부는 실제 감염으로 이어지지만 나머지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도 관찰된다. 코로나19를 포함한 바이러스는 세포 안에서 살지 않을 경우 사멸하게 되는데, 건조한 무생물 표면에서는 3일까지 살아있을 수 있다고 한다. 다행히 열과 소독약제에 약하다는 특성이 있어 적절한 소독 절차에 따라 소독한 경우라면 전파력이 없다. 따라서 확진자가 다녀간 장소라도 적절한 소독이 이루어졌다면 해당 장소에 방문해도 감염될 위험이 없다. 중국에서 발송된 택배나 중국에서 제조된 김치를 기피하기도 하는데, 택배 상자를 포장하는 과정이나 김치 제조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유입됐더라도 제조 및 운송에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 안에서 바이러스가 생존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따라서 과도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반려동물을 통한 전파 가능성 부분은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이론적으로는 동물마다 호흡기에 존재하는 바이러스 수용체가 다르기 때문에 사람에 감염을 일으킨다고 해도 반려동물에 감염을 일으킬 확률은 높지 않다. 코로나19 전파 방지를 위해서는? 코로나19는 새로운 감염병이기 때문에 환자를 분류하는 기준이 혼란스럽고 어렵다. 게다가 유행이 커지고 장기화되는 만큼 질병관리본부 등 국가 당국이 100% 완벽하게 대응하는 것에도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이 예방지침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국내에서는 중국 방문과 확진자 직접 접촉을 감염 위험 노출자로 간주하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감염 위험 노출 시점부터 2주 이내에 37.5도 이상의 발열이나 기침, 호흡 곤란 등의 호흡기 증상이 나타난다면, 절대 외출하지 말고 질병관리본부 콜센터인 1339로 연락하여 추가 조치에 대한 안내를 받아야 한다. 방역 당국이 공개한 확진자 이동경로를 보고 본인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가까이 있었다고 판단되면 즉시 신고하고 당국의 안내를 받는 것이 좋다. 단, 현재 많은 문의전화로 콜센터 업무의 과부하가 있는 만큼 너무 무분별한 신고는 분명 자제해야겠다. 감염병 예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침 예절과 손 위생 관리가 중요하다. 알려진 감염 위험에 노출이 없다고 할지라도 가급적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 방문하는 것은 삼가고, 부득이하게 외출할 경우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또한, 의료기관 방문이 필요한 경우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하며 의료진에게 사전에 해외여행력과 접촉력을 알려야 한다. 마스크가 없으면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꼭 옷소매로 입과 코를 가려야 한다. 오염된 손으로 코나 입을 닦을 때 바이러스가 몸 안에 침투할 수 있기 때문에 외출 전후로는 반드시 비누나 알코올 젤을 이용하여 손을 닦는 등 철저하게 손 위생에 신경 써야 한다. ※ 이 글은 2월 13일을 기준으로 작성된 원고입니다. 글 김봉영 교수(한양대학교병원 감염내과) | 일러스트 허예리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사랑한대'의 2020년 봄호(통권 제253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 사랑한대 2020년 봄호(통권 제253호) 보러가기

2020-03 01

[오피니언][사랑한대] 담장 없는 에세이, 누리고자 하는 만큼 누리는 대학 생활

누리고자 하는 만큼 누리는 대학 생활 대한민국 청소년이라면 끊임없이 듣는 말들이 있다. ‘대학에 가야 한다’, ‘대학 가면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어’, ‘대학 가면 살 빠져’ 등 여러 버전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말들을 수없이 들으면서도 나는 정작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를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이 지긋지긋한 수험생활의 끝이 대학 입학이라는 생각만 하고 살았다. 그렇게 나는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에 입학했다. 과연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다 하고 살았을까? 인생의 분기점 그리고 나를 찾는 시기 대학 입학 후 나는 대학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은 다 누리려고 노력했다. 기숙사 생활, 자취, 휴학, 대외활동, 교환학생, CC, 인턴십 프로그램 등 모두 다 말이다. 그 과정은 내게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처음 만난 룸메이트, 고등학교 선생님들과 달리 어려워 보이는 교수님들, 한 살 밖에 차이 나지 않지만 어른처럼 느껴지는 선배들, 각양 각지에서 모인 동기들까지. 나는 한양대라는 한 사회에 입성한 것이다. 고등학교 때와 비교해 내가 선택하고 경험할 수 있는 폭이 매우 넓어졌다. 그러던 중에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갔던 선배가 내게 교환학생 제도를 추천했다. 한양대와 교류하는 대학은 아시아·미국·중 남미·유럽국가 등 세계 곳곳에 매우 많다. 자격요건만 갖춘다면 내가 가고 싶은 나라에서 유학을 할 수 있다. 그중 어렸을 때부터 막연한 동경을 갖고, 꼭 한번 살아보고 싶었던 네덜란드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다. 네덜란드에서 보낸 6개월은 나에게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혀준 인생의 분기점이었다. 낯선 타지에서 생활하며 0부터 100까지 내 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부터 집 계약, 자전거 사고 시 보험 처리 등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에서 나의 삶을 꾸려나갔다. 외국인 룸메이트를 비롯해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 사이에서 적응해야 했다. 생각지도 못한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부닥칠 때도 스스로 타개해야 했다. 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그 사이에서도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고, 파티를 즐기고, 여행을 다니며 즐겁게 생활했다. 이때 알게 된 소중한 친구들과는 지금까지도 연락을 하고 있다. 이처럼 교환학생 제도를 통해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내 소망을 이룰 수 있었다. 또한, 세상을 향한 더 넓은 견문을 가지고, 자립심을 기르게 되었다. 동시에 내가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에는 취업 준비 전 내가 관심 있던 마케팅 분야의 실무를 경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막연한 흥미만 가지고 있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는 분야를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또 다른 선배의 추천으로 현장실습 제도를 알게 되었다. 학연산 클러스터 체계가 매우 잘 돼 있는 우리 학교는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을 포함하여 다양한 기업과 직군을 다루는 현장실습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나는 의·약학 연구개발 기업의 전략기획 부서에서 6개월간 마케팅 실무를 담당하며 사회생활을 체험했다. 책에서만 보았던 마케팅을 실제로 경험하면서 내가 알던 것을 적용하고 확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첫 사회생활이라 걱정이 많았지만, 최종 평가에서 업무 이해도와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와 함께 정직원 입사 제의를 받는 뿌듯한 경험을 했다. 생각했던 것들을 이루게 해주는 곳 결국, 글 서두에 던졌던 질문의 답은 ‘그렇다’이다. 한양대에서 보낸 5년 동안 내가 받은 것들은 무수히 많다. 교환학생·현장실습을 경험하며 나의 부족한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것을 채우려 더 열심히 공부했다. 한양대에서 제공한 기회를 통해 얻은 값진 경험들이 나를 한층 더 성장시킨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한양대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이 있다. 매 수업 열정을 다해 가르침을 주시는 교수님들, 각자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 여러 가지 고민에 소중한 조언을 주어 나를 이끌어준 선배들과 잊지 못할 대학 생활을 만들어준 동기들까지. 이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남들과 차별화되는 방법은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다. 우리 학교는 특히나 이런 경험을 누릴 기회를 많이 제공하고 있다. 체계적인 교환학생 제도, 다양한 기업들과 연계해 실무를 체험할 수 있는 현장실습 제도 등 이 글에서 열거한 것들 이외에도 우리 자신을 성장시킬 기회가 많다. 졸업을 앞두고, 또 다른 시작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지난날의 경험들은 내게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주었다. 이번에 입학할 신입생들뿐만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우리 대학에서 제공하는 많은 것을 누리며 대학 생활을 즐겼으면 좋겠다. 또한, 이곳 한양대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을 마음껏 이루고, 이를 토대로 자신을 완성하는 시기를 가지기를 소망한다. 글 임하은 학생(경제학부 15) 한양인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한양대학교 학부생 및 대학원 재학생과 학부모, 동문, 교직원 등 한양인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시, 에세이, 여행기, 감상문 등을 이름, 소속, 연락처와 함께 보내주세요. 작품 및 사연이 선정된 분께는 소정의 선물을 보내드립니다. 주제 제한 없음 | 분량 원고지 12매 이내 | 마감 5월 10일 접수 한양대 미디어전략센터 <사랑한대> 담당자 newsh@hanyang.ac.kr ※ <사랑한대>를 우편으로 받아보시는 독자는 주소 변경 시 아래로 연락 바랍니다. 구독 및 주소 변경 [온라인] http://hyu.ac/love [전화] 070-7711-9933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사랑한대'의 2020년 봄호(통권 제253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 사랑한대 2020년 봄호(통권 제253호) 보러가기

2020-01 02

[오피니언][사랑한대] 빙판길 겨울철 빈번한 '낙상사고' 주의

빙판길 꽈당! 겨울철 빈번한 '낙상사고' 주의 겨울철에는 근육이 경직돼 반사적 대응이 떨어져 쉽게 넘어지거나, 길이 얼어붙어 자칫 미끌어질 수 있다. 낙상 사고시 비교적 가벼운 타박상이 대부분이지만, 뼈가 약한 중장년이나 노인의 경우에는 골절이 발생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척추나 고관절(엉덩이뼈)을 다치면 혼자 걷지도 못하고 일상생활에도 큰 불편을 겪게 된다. 골절이 심각한 경우에는 여러 합병증을 유발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겨울철의 복병, 낙상사고의 예방법 및 치료법 등을 알아보자. 어느 부위에 잘 생기나요? 낙상사고로 인한 주요 골절 부위는 손목, 척추, 엉덩이다. 손목과 척추는 골절이 되더라도 증상이 없이 지내거나 수술을 받지 않아도 치유되는 경우가 많으나, 고관절의 경우 이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인다. 엉덩방아를 찧으면 처음에는 통증이 심하지 않고, 부기가 적어서 이상 여부를 잘 느끼지 못한다. 특히 노인들은 평소 활동력이 별로 없거나 치매 같은 신경계 질환을 가진 경우도 있어 초기에는 잘 모르고 있다가 시간이 지체된 후에야 골절을 발견하기도 한다. 고관절 골절은 대퇴골의 목 부분(경부)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처음에는 단순히 금만 간 경우라도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분리되는 형태로 진행된다. 어떻게 치료하나요? 고관절 골절이 발생할 경우 수술이 필요하다. 고관절은 보행 시 체중의 약 3배의 충격을 받는 부위라 골절을 잘 맞춰 놓아도 쉽게 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해부학적 구조상 뼈로 가는 혈액의 공급이 골절로 인해 차단되고, 뼈가 영양 공급을 받지 못해 골절 부위가 붙지 않거나 괴사할 수 있어 대부분은 수술을 시행한다. 수술은 크게 환자 본인의 뼈를 붙이는 방법과 인공 관절로 대치하는 방법이 있다. 먼저 본인의 뼈를 붙이는 수술은 환자 자신의 뼈를 이용해 골절을 맞추고 붙이기 때문에 수술 후에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데 유리하나, 골절이 붙을 때까지 장기간 안정을 취해야 하고, 붙지 않으면 재수술을 할 수도 있는 단점이 있다. 인공 관절로 대치하는 수술은 재수술의 위험성이 낮고 조기에 보행을 시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수술이 광범위하고 출혈이 많은 단점이 있다. 골절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넘어지지 않는 것 외에 골절을 예방하기 위한 묘책은 없다. 그러나 골절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다. 골다공증 환자라면 뼈의 강도가 낮아서 단순 낙상에 의해서도 골절을 입을 위험이 더욱 크다. 이러한 골다공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기적인 검사를 통해 골다공증을 진단받는 것이 중요하다. 병원에서 고관절 골절로 수술받는 환자의 대부분이 골다공증 검사를 해본 적이 없으며, 골절 이후에야 비로소 본인의 골다공증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자신의 골다공증 여부를 미리 진단받고, 만약 그렇다면 적절한 약물치료로 골다공증을 치료해야 한다. 또한 평소 적절한 운동을 하는 것도 골절 예방에 도움이 된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근육의 양은 감소하고, 반사신경과 같은 운동신경도 둔화한다. 이로 인해 추운 날씨에 움츠린 상태에서 걷다가 넘어지면 적절한 보호 동작 없이 고관절 부위로 넘어져 골절이 발생한다. 적절한 운동법으로는 빠르게 걷기, 조깅, 층계 오르내리기가 있다. 평소 1시간씩 일주일에 3회 이상 이 같은 운동을 함으로써 근육의 힘과 뼈의 강도를 높일 수 있어 골절을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다. 결론적으로 겨울철 골절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눈이 온 날에는 외출은 되도록 삼가되, 외출해야 한다면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장갑이나 목도리를 착용해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움츠리고 걷지 않도록 한다. 아울러 평소 꾸준한 운동과 골다공증에 대한 관심과 치료로 겨울철 골절을 예방할 수 있다. 글. 김이석 교수(한양대학교병원 정형외과)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사랑한대'의 2020년 1,2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 사랑한대 2020년 1,2월호 보러가기

2020-01 02

[오피니언][사랑한대] 사회 변화를 위한 교육적 상상력

“교육이 사회변혁을 위한 궁극적인 수단은 아니지만, 교육이 없으면 사회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없음은 사실입니다.” <프레이리의 교사론> 중에서 교육을 통한 사회적 변화는 어디까지 가능할까? 가르치는 일은 학생들과의 개인적인 상호작용으로, 한 아이가 자라고 성장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교사에게는 큰 보상이 된다. 수많은 업무 가운데에서도 학생들과의 크고 작은 소통과 교감을 통해 가르치는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영감과 힘을 얻는다. 하지만 학생들의 자라나는 모습 안에서 사회적인 변화까지 그려보기란 쉽지 않다. 교육을 통한 사회적 변화는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한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서 기대할 수 있는 사 회 변화는 어떤 모습일까? 2019년 한양미술+디자인교육센터(Hanyang Education in Art & Design, HEAD Lab)에서 진행한 교육사업들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저소득층 미술영재교육 사업과 발달장애 청소년 미술교육 사업을 통해 결핍의 관점이 아닌 차이 그리고 이로 인한 특별함으로 학습자의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는 교육적 방법을 찾고자 했다. 〈들꽃, 드디어 꽃이 되다〉, 〈온 세상이 나를 바라볼 때〉라는 수료 전시의 제목은 이런 프로그램의 성격을 잘 보여줬다. 참여한 초중등 학생들이 사회적 기준에 따라 저소득층 혹은 발 달장애 학생으로 분류될 수는 있겠지만, 전시된 작품을 자세히 바라보면 소외 집단이 아닌 한 명, 한 명 저마다의 주체적인 목소리로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각자의 출발점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키울 수 있도록 사회적 규준과 일반화된 잣대에서 벗어난 학생들은 종종 출발점에서, 교육 과정에서, 혹은 교육 결과에서 불평등을 경험한다. 공정함과 합리주의를 내세운 교육 체제가 공평성(equity) 보다는 균등함(equality)을 확보하는 데 머물고 말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 인정받는 것, 그리고 각자의 출발점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할 충분한 기회를 제공받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표준화된 시험을 통해 같은 기준으로 평가받고, 그 결과가 학생들의 전부가 되어버리는 사회 안에서라면 차이는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이자 한계가 된다. 모든 학생이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장애물을 한 번에 제거할 수 있는 묘안은 없지만 자신만의 색으로, 자신의 관점에서 한계 상황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의미 있는 시도가 될 수 있다. 이는 같은 교육 과정과 표준화된 시험에 학생들이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내용과 방법이 학생들의 관심과 특성에 따라 유연하게 변형되고 조율되는 교육 환경을 전제로 한다. 어쩌면 비용이 많이 들고 학습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는 비효율적인 방식이 되겠지만, 학습자의 차이에 기초한 개별화된 교육을 모색하는 것은 복잡성으로 대표되는 미래 사회로의 변화를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예술을 통한 미적 경험으로 삶에 의미 부여 미술교육은 산업화 모델에 기초한 근대 교육이 시도하지 못한 교육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유용한 기반이 된다. 자유롭게 그려보라는 미술 선생님의 이야기에 백지 앞에서 막막함을 느꼈던 학창 시절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지, 어떻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하는지를 묻기보다는 암기한 것을 재생할 수 있는지, 얼마나 빨리 풀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교육에 익숙해진 탓일 것이다. 이러한 표준화된 틀 안에서 잘 적응하기 어려운 학생들은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기회를 잃고 분리되거나 소외되기 쉽다. 예술을 통한 상상력을 강조한 교육 철학자 맥신 그린은 사회의 다양한 장면에서 주변화된 소외계층 학생들이 집단에서 ‘보이지 않음(invisibility)’을 극복하는 데에 미적 교육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술을 통한 미적 경험과 표현은 사회가 정해준 자리에 자신을 위치시키기보다는,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이 주인공인 세계를 상상하며 그려가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세계화 시대에 난민, 이주노동자 유입, 정치적 이념이나 계층 간 갈등으로 인한 사회 양극화 등 증가하는 문화적 다양성은 외면할 수 없는 교육적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개인적, 문화적, 사회·경제적 차이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배려는 정규 분포 밖에 놓인 다양한 학생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모두를 위한 교육의 틀을 구축하는 데 핵심이 된다. 차이가 배제의 이유가 아닌 특별한 가치로 인정되는 교육, 학습이 객관적 지식의 습득을 넘어 자유로움을 획득하는 과정이 되는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 한 학생, 한 학생에 집중하여 문화적 다양성을 획득하기 위한 교육적 실험과 시도가 이루어질 때, 포용적 사회로의 전환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글. 김선아 교수(사범대학 응용미술교육과/한양미술+디자인교육센터장)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사랑한대'의 2020년 1,2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 사랑한대 2020년 1,2월호 보러가기

2018-03 14

[오피니언][타임머신] 소설이 만들어진 자리

인문대로 향하는 138개의 계단 중 마지막 네 개의 계단을 남겨두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면 좁은 샛길이 나온다. 중앙도서관 쪽으로 난 좁은 흙길이다. 습관처럼 인문대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섰다가 중앙도서관에 가야 할일이 뒤늦게 생각나거나 제2공학관에 수업이 있는 걸 깨닫고 난감해질 때 계단을 다 올라서지 않아도 지름길로빠질 수 있는 셈이다. 그래봤자 거의 다 올라온 셈이어서 굳이 그 길로 다니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편혜영(소설가·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국어국문학과 졸업) 사방이 고요한 좁은 흙길 길에는 드문드문 긴 나무의자 세 개가 놓여 있었다. 사람들이 머문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진 의자로, 나뭇결이 갈라져 잔가지가 도드라진 탓에 함부로 만지면 가시가 박히기 십상이고, 어두운 색의 옷을 입고 앉았다 일어서면 페인트 부스러기가 잔뜩 묻어나곤 했다. 볕이 좋은 날이면 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누군가와 수다를 떨기도 했지만, 대개는 혼자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냈다. 춥지 않은 바람이 일정한 방향으로 불고 발끝이 바닥에 닿을 때면 가볍게 흙먼지가 일었다가 금세 가라앉고 수업이 시작되어 모두 교실로 몰려갔는지 사방이 고요한 속에 홀로 있으면 당연히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 마련이고, 생각이 고이면 언제나 그렇듯 소설이 쓰고 싶어졌다. 간혹 인문대에서 사범대, 중앙도서관으로 이어지는 큰길을 지나가는 사람들 때문에 소란스러워졌지만 그 길의 소음은 금세 고요 속으로 스며들어버렸다. 학교 내에서 그렇게 묵묵한 곳은 드물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연신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지만, 조용하고 고요한 소란스러움이었다. 딱딱한 나무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소설을 쓰다가 마음 내키면 쓰고 있는 소설을 읽거나 쓰다만 소설의 뒷부분을 조금씩 이어 써나갔다. 그곳에 앉아 있다고 해서 놀랄 만큼 일이 잘되거나 수월히 써지는 법은 결코 없었다. 그럼에도 소설이라는 것은 세상과 그다지 멀지 않은 자리에서 세상으로부터 멀어진 기분이 들어야 겨우 조금 쓸 수 있다는 걸 실감했다. 언제나 여전한 인문대 복사실 운 나쁘게도 의자는 셋뿐이어서 누군가 차지하고 있을 때가 더 많았다. 그런 날이면 주저하지 않고 인문대로 갔다. 인문대 지하 계단을 내려서면 가장 먼저 복사실이 보였다. 그곳은 언제나 문이 열려 있고 무료한 표정의 아저씨가 턱을 괴고 앉아 어두운 계단참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사실 복사실 아저씨는 계단참에 무료한 시선을 둘 때보다 복사기 앞에 서 있거나 제본기 앞에서 분주히 손을 놀리고 있을 때가 많았다. 아저씨의 얼굴은 자주 보고 몰래 훔쳐보기도 했지만 잘 기억할 수 없었는데, 그건 아저씨가 얼굴 정면을 내보일 때보다 일정한 속도로 뿜어내는 복사기의 빛 속에서 살짝 얼굴을 드러냈다가 감추는 때가 많아서였다. 누군가 인문대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을 꼽으라면(그러나 아무도 이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나는 주저 없이 복사실이라고 할 작정이었다. 좋아하는 장소라고 해서 특별한 용무 없이 복사실 앞을 서성이거나 무턱대고 들어가서 구경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나는 주로 복사실 앞 휴게실에 앉아 그곳을 조금씩 훔쳐보는 쪽을 택했다. 휴게실은 오래된 기원을 연상시키는 소파와 테이블이 늘어서 있었는데, 언제나 시끄러웠다. 수업이 없고 딱히 갈 곳을 찾지 못한 인문대 학생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 거기였다. 지하에는 연극영화학과 학생들의 연습실이 있어서 목청 높인 연습생의 소리도 들려왔다. 휴게실 안쪽에는 인문대 도서관이 있었다. 지하여서 습하고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는데, 몇몇 선배들은 제집처럼 종이 파일로 벽을 쌓아놓고 고개를 수그리고 책을 들여다보았다. 어깨를 잔뜩 웅크린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 더 추워졌다. 그래서인지 한기 도는 불안한 도서관보다 복사기 빛이 늘 은은히 끊이지 않는 복사실을 보고 있는 게 더 마음 편했다. 나는 휴게실에 앉아 자주 복사실을 힐끔거렸다. 정확히 말하면 복사실을 들여다보기 위해 휴게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복사실 아저씨가 쉬는 시간에, 문을 닫는 점심시간에 어디에서 머물지, 어떤 식사를 할지, 무슨 이야기에 관심이 있을지, 자신이 복사하는 학술서나 원서를 간혹 읽기도 할지, 똑같은 내용의 문장들을 계속 들여다보면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했지만 그보다는 경외심이 더 컸다. 소란스러운 가운데 누군가는 주어진 일을 하고 언제나 꾸준하고 세상과 관계없이 뭔가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사람들 앞에 물건으로 만들어 내놓는다는 게 경이로웠다. 복사실 아저씨는 말하자면 언제나 그곳에 있는 사람이었다. 아담하고 흐트러져 보이지만 질서정연하게 물건이 배치되고 종이와 글자와 문장이 마구 쌓인 그곳에. 성장한다는 것은, 사회인으로 자립한다는 것은 아저씨처럼 정착할 공간이 생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소설을 쓴다는 것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학교를 졸업하고 다행히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여덟 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러는 동안 깨달은 것은 소설을 쓰는 일은 무척이나 숙련도가 낮다는 것이다. 새로 소설을 시작할 때마다 길을 잃은 기분이 든다.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인물은 어떻게 구체화하는지, 매번 처음인 듯 서툴기만 하다. 그렇게 겨우 소설을 완성하고 나서는 소설을 쓰는 일이 매번 같은 강도의 노동을 되풀이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소설을 쓴다는 것이 인적 드문 샛길의 의자와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세상 속에서 고요하게 자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무엇이든 쓸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복사하는 일과도 같은지 모른다. 세상이라는 책과 인간이라는 자료집을 들고 그것에 얼마간 빛을 쪼여 베껴내는 일 말이다. 물론 복사한다고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그렇다. 복사광을 쬔다고 한 편의 소설이 순식간에 완성될 리도 없다. 말하자면 이것은 고요와 항상성에 대한 비유라고 말할 수 있다. 많은 것이 달라진다. 아예 사라지기도 한다. 모양이나 용도가 이전과 전혀 달라지기도 한다. 변함없이 시간이 그렇게 만든다. 그럼에도 어떤 것은 그대로 남는다. 변하지 않는 것, 고요한 것을 바라보면 마치 삶을 대할 때 그런 것처럼 뭉클해진다. 지금은 사라진 의자와 지금도 여전한 복사실이 내게는 그렇다. 사랑한대 2018년 01-02월호 이북 보기

2017-12 19

[오피니언][짧은 글 긴 이야기] 한양대에서 출발한 학문적 여정

1997년 봄이 오기 직전 매섭게 차가운 바람이 불던 어느 날, 나는 경기도 용인의 놀이공원으로 가는 차에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다른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정말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놀이공원에 가는 줄만 알았다. 글. 강성훈 교수(정책과학대학 정책학과) / 그림. 안우정 20여 년 만에 다시 선 교정 용인에 도착했을 때 차는 갑자기 방향 감각을 잃은 듯 이상한 시골길로 향했다. 저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간판에는 기숙학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부모님은 당시 내가 합격한 대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1년 더 공부하길 원하셨다. 나는 부모님의 기대대로 순순히 기숙학원에 들어갔다. 그때 부모님은 나에게 긴 편지와 함께 “넌 할 수 있어”라는 말을 하시고 떠났다. 처음에는 그 말이 진부하게 들렸지만 이상하게도 큰 동기부여가 됐다. 이후 1년 동안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1998년 초 어느 눈 내리는 추운 겨울날, 나는 한양대 운동장 한편에서 합격자 명단에 적혀 있는 내 이름을 보면서 인생의 첫 번째 마라톤을 무사히 완주했다고 생각했다.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셨던 부모님과 할머니의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가족의 사랑을 받으면서 한양인(경제금융학부 98)이 됐다. 2017년 9월 가을이 시작될 무렵, 나는 학생이 아닌 교수로 다시 한양대에 들어섰다. 한양인으로서 첫발을 내딛은 지 거의 20년 만이다. 처음 교단에 섰을 때 느낌이 묘했다. 어린 학생들 틈 속에서 내가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질문과 토론에 적극적인 학생들 세월이 지났어도 한양대의 언덕이 어디 가질 않듯 새내기는 새내기고 고학년은 고학년이었다. 새내기와 고학년의 큰 차이는 취업에 대한 무게일 것이다. 그 무게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요즘은 더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의 자세가 남다르게 느껴진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질문에 적극적으로 답하거나 토론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수업 시간에 자신 있게 의견을 내고, 복도에서 친구들과 함께 토론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아빠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이 질문과 토론이었다.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수업 시간에 질문하거나 토론할 때 내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 번지점프를 하는 것보다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모르는 것에 대해 질문하는 용기를 가지게 됐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이면서 내 의견을 다른 사람과 자신 있게 나눌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무척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수업 시간에 자신 있게 질문하고 때로는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되면서 수업을 준비하는 나의 자세도 바뀔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학생과의 상호 작용을 통한 수업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얼마 전 수업 시간에 간단한 경매 게임을 한 적이 있다. 이 게임은 승자의 불행(또는 승자의 저주)에 관한 게임이었다. 나에게는 첫 시도였는데,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줘서 무척 고마웠다. 누군가의 진로를 바꾸는 수업 수업은 한 학생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한 수업을 듣고 진로를 결정했다. 석사학위 지도교수인 경제금융학부 홍종호 교수님의 학부 수업을 들으며 경제학에 흥미를 가지게 됐고, 이것이 유학을 결정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이 수업을 통해 내가 경제학에 흥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다소 어려울 수 있었던 경제학 개념을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와 연결해 설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수업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경제학이라는 학문에 큰 매력을 느낀 것이다. 홍종호 교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나도 내 수업에서 경제학 개념을 현실적인 이슈와 문제를 활용해 설명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학생들이 살아가면서 세상을 이해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데 수업 시간에 배운 경제학 개념이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연구는 교수 생활의 엔진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수업이라는 또 다른 엔진과 연결돼 있다. 수많은 새로운 연구가 매년 수행되고 있고 우리의 지식은 쌓여간다. 만약 연구가 멈춘다면 수업 내용은 과거에만 머물게 될 수 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 중 하나는 그들의 연구가 매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수업과 외부 활동으로 바쁜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한 해에도 여러 편의 연구가 끊임없이 SSCI급 저널에 게재된다. 교수들의 연구 성과가 수업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양대에서 출발한 나의 학문적 여정은 이제 새로운 장을 맞이했다. 모든 것이 감사하고 새롭고 설렌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수업과 연구라는 두 엔진을 열심히 가동해서 내가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도와주신 훌륭한 교수님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특히 석사학위 지도교수이신 홍종호 교수님과 박사학위 지도교수이신 마크 스키드모어(Mark Skidmore) 교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이 내 제자들에게도 잘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한대 2017년 11-12월호 이북 보기 ;

2017-12 19

[오피니언][타임머신]두고두고 좋은 인연, 한양대와 바둑

나는 대학에 입학했을 때 바둑 전문선수인 프로기사(棋士)였다. 고등학생 때 프로로 데뷔한 후 한양대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했다. 당시 프로기사라는 희귀한 직업을 가진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학교나 바둑계에서 꽤 인기가 있었다. 신문이나 방송 등 매스컴에 내가 둔 시합과 함께 자주 이름이 올랐다. 정수현(명지대 바둑학과 교수·영어영문학과 76) ▲ 정수현 교수가 바둑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바둑과 학업 두 마리 토끼를 잡다 대부분의 대학생 스포츠 선수들이 그렇듯이 기사 생활과 대학 생활을 양립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바둑 시합과 학교 수업이 겹칠 때 출석 문제가 골칫거리였다. 전공과목으로 ‘햄릿’을 가르치던 노교수님이 계셨는데, 학생들에게 일일이 출석표를 나눠주며 직접 이름과 학번을 써내도록 했다. 시합 시 출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한 가지 묘수를 생각해냈다. 바둑 시합이 오전에 열리니 오후에 배정된 교과목을 신청하기로 한 것이다. 즉 오전에 시합을 마치고 얼른 학교에 가 수업에 참석한다는 전략이었다. 그런데 이 방법도 문제가 있었다. 그 무렵에는 한 판의 시합을 하는 데 각자 2~3시간씩 주어졌기 때문에 이 시간을 다 쓰면 오후 3~4시에 끝났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바둑을 최대한 빨리 두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할당된 시간을 최대한 줄여 가급적 점심 무렵에 끝내려고 애썼다. 이로 인해 나는 속기파(速棋派) 기사로 변하게 됐다. 원래는 수읽기를 많이 하는 타입이었는데, 바둑과 학업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보니 감각적으로 두는 속기파가 된 것이다. 그 덕분이었을까. 나는 방송에서 개최하는 속기 시합에 강해졌다. KBS바둑왕전과 SBS바둑최강전에서 고수들을 꺾고 결승까지 오르는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아쉽게도 최고수 이창호 9단을 만나 두 번 다 준우승에 그쳤지만, 출석을 위한 빨리빨리 전략이 속기 훈련이라는 색다른 이점을 준 것이다. 진짜 ‘바둑학 교수’가 되기까지 나의 대학 생활은 상당히 바쁜 편이었다. 당시 학생이었지만 나는 새롭고 창의적인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편이었다. 한국기원에서는 바둑시합 외에도 초보자나 아마추어를 위해 바둑강좌 코스를 만들어 직접 가르쳤다. 또한 월간 바둑지에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성신여대 등 다른 대학교에 가서 바둑을 가르치기도 했다. 새벽에는 영어학원에 다녔다.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해서인지 수업 시간에 가끔 졸았다. 한번은 맨 뒷줄에 앉아서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데, 분위기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부스스 눈을 떴더니 학생들이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달콤하게 낮잠을 자다가 교수님이 문장을 읽어보라고 호명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도 나는 리포트 쓰는 것을 좋아했다. 한번은 짝사랑의 비애를 담은 영어 에세이를 써서 A+를 받았다. 다른 과목에서도 리포트 점수는 높았다. 돌이켜보면 나의 대학 생활에서 가장 많은 도움이 된 것은 리포트 쓰기였던 것 같다. 리포트 작성은 글쓰기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훈련에도 도움이 됐다. 졸업 후 나는 대학에서의 경험을 살려 바둑 관련 서적을 30여 권 저술했다. 그중에는 <바둑 읽는 CEO>, <고수경영>과 같이 바둑의 지혜를 다룬 에세이도 있다. 이런 책을 많이 쓴 덕분에 나는 바둑 기자들로부터 ‘바둑학 교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20년 전에 명지대학교에 사상 처음으로 바둑학과가 생겼을 때 진짜 교수로 부임했다. ▲ 총동문바둑대회 현장 모두가 부러워하는 한양기우회 나의 대학 생활에서 특별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하나 있다. 대학에 다닐 때 만들었던 ‘한양기우회’라는 동아리 모임이다. 이 동아리의 회원들이 졸업 후 한양(OB)기우회를 만들었다. OB기우회는 대학의 바둑동아리에 장학금을 주고 행사도 후원한다. 이 기우회는 지금까지 35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 수년 전 서울대를 비롯한 다른 대학교 바둑 동호인들이 한양대 기우회를 부러워해 벤치마킹했다. 한양기우회의 탄생은 내 생각에서 비롯됐다. 1980년께 학교에 다닐 때 나는 한양대에 기우회가 없는 것을 아쉽게 생각했다. 그래서 교내에 기우회를 하나 만들었으면 했다. 그러던 차에 같은 영어영문학과 2년 후배인 이일환 동문과 우연히 바둑 얘기를 하게 됐다. 당시 전체 학생회 간부였던 이일환 동문은 매우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훗날 고위 공무원으로 활약했다. 내가 기우회를 만들면 어떻겠냐고 하자 그는 즉시 찬성했다. 그리고는 기우회 소집 안내문을 만들어 벽보판에 붙였다. 기우회 창립을 위한 대망의 발기모임이 교내 노천극장에서 열렸다. 몇 명이나 올지 가슴을 졸였는데, 예상 외로 많은 인원이 참석했다. 그때 멋진 비전을 선언하며 한양대 기우회를 발족시켰다. 바둑계 사람들에 의하면 한양기우회는 특별한 점이 있다고 한다. 회원들 간에 우애가 깊고 분위기가 매우 좋다는 것이다. 회원들은 대학연맹전 출전 같은 문제에서는 양보의 미덕을 발휘하지만, 식사 때는 서로 식대를 내려고 한단다. 유머 있는 해설로 유명한 ‘바둑계의 김구라’ 김성룡 9단도 한양기우회를 좋아한다. 이 기우회에서 만나 부부가 된 커플도 몇 쌍 있다. 한양기우회의 이런 인간적인 분위기에는 역대 회장들이 많은 기여를 했다. 강병두, 이원옥, 한태완 동문 등 여러 회장들이 애정을 갖고 기우회를 이끌었다. 여성 회장이었던 원영숙 동문은 기우회에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해 바둑계에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현재는 박승자 회장이 맡아 한양동문 바둑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주관한다. 기우회에서는 바둑 모임뿐만 아니라 체육 행사와 엠티(MT) 같은 프로그램도 개최한다. 근래에는 한양대 총동문회와 협력해 동문 바둑대회를 여러 차례 개최해오고 있다. 한양대의 색다른 자랑거리인 한양기우회가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 사랑한대 2017년 11-12월호 이북 보기

2017-09 14

[오피니언][짧은 글 긴 이야기] 인공지능과 바오밥나무

인공지능이라는 화제 속에는 편리함과 동시에 어쩔 수 없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어린 왕자>와 신화 속 바오밥나무라는 렌즈를 통해 인공지능을 바라본다면 이 두려움이 어떻게 바뀔까요? 글. 안연경(의학과 14) / 그림. 안우정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 <어린 왕자>에는 바오밥나무에 대한 흥미롭고도 무서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너무 크고 깊게 자란 바오밥나무 세 그루가 어느 별을 점령해버렸다는 이야기인데요. 요즘 우리가 인공지능에 대해 걱정하는 바가 이와 같지 않을까요?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직업을 뺏기진 않을지, 인간을 넘어선 인공지능이 오히려 인간을 착취하진 않을지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작년 이세돌 9단을 이겨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알파고는 올해 더 발전한 모습으로 돌아와 중국 커제와의 대국에서 완승했습니다. 일찍이 승패보다는 알파고가 어떻게 이길지에 초점을 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벌써 인공지능이라는 바오밥나무가 우리 키를 훌쩍 넘어서 자라고 있다고 믿는 듯합니다. 그런데 과연 인공지능은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요? 바오밥나무에는 이런 신화도 있습니다. 신이 가장 먼저 창조한 나무가 바오밥나무인데, 정작 이 나무는 다른 예쁜 나무들을 부러워해 자신의 모습을 바꿔달라고 신에게 청했다고 합니다. 결국 신의 노여움을 산 바오밥나무는 뿌리가 하늘을 향한 채 거꾸로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다네요. 가지는 아래로, 뿌리는 위로 향한 신화 속 바오밥나무에서 우리는 인공지능의 일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바오밥나무의 가지, 줄기 그리고 뿌리 먼저 아래로 향한 가지는 땅 속에 박혀 있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정보를 알려주는 인공지능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공지능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미처 알지 못했거나 분석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방대한 정보를 빠른 시간 안에 알려줄 수 있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인문, 예술, 과학 등 인간이 이미 활동하고 있는 다른 분야까지도 무섭게 침투해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인간의 오랜 꿈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일을 대신해주는 편리함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감성으로 영역을 넓혀 인간의 친구 역할까지 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하지만 한편으론 두려운 인공지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 시작은 우리 눈에 보이는 바오밥나무의 줄기부터입니다. 인공지능이 각각의 가지마다 모은 여러 정보는 줄기라는 패러다임으로 흘러들어옵니다. 이 패러다임은 인간이 결정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어떤 정보가 필요하고 그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지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줄 따름입니다. 예를 들어, 운전이나 교육 등의 활동은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겠지만, 운전을 해서 무엇을 어디로 보낼지 혹은 누구에게 어떤 교육을 시킬지와 같은 큰 틀을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입니다. 학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공지능이 분석을 하거나 학습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정도의 고차원적 사고가 가능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이 생각은 바오밥나무의 뿌리로 이어집니다. 뿌리는 인공지능의 사바오밥나무고방식입니다. 인간 뇌와 달리 인공지능의 사고방식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그칩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설 수 없는 이유이자 우리의 자리를 뺏길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 뇌의 사고 회로를 모방해 빠른 시간 안에 학습하는 프로그램을 탑재했다고 하지만 그건 일부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인간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완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인간은 삼각형을 그려 놓고 ‘산’이라고 서로 공감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단순화 과정이 뇌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마치 땅에 박혀 있어 보이지 않는 보통 나무들의 뿌리처럼, 우리조차도 알지 못하는 인간의 사고를 인공지능이 넘어설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인공지능의 사고방식은 거꾸로 박힌 바오밥나무의 뿌리처럼 훤히 보이니까요. 인간과 인공지능의 평화로운 공존 지금까지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설 수 있을지 바오밥나무를 통해 알아봤습니다. 사실 인공지능이라는 바오밥나무가 무분별하게 자라 인간이라는 별을 점령한다고 해도 우리에겐 마지막 방법이 남아 있습니다. 바로 전기를 차단하는 것입니다. 물론 농담입니다. 인공지능은 결국 인간이 인간 자신을 위해 개발한 것이고, 그렇게 사용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전혀 인공지능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여기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인공지능을 우리에게 이롭게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특히 윤리적인 측면에서 인공지능을 통제할 방법을 합의할 수 있다면, 인간과 인공지능의 평화로운 공존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한대 2017년 9-10월호 이북 보기

2017-09 14

[오피니언][건강한대] 꾸준한 자외선 차단으로 평생 피부 건강 지킨다

자외선은 피부 표면에 있는 균과 피지선 땀구멍 등에 있는 균을 죽이며, 칼슘의 신진대사와 뼈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타민D를 합성한다. 또 피부과적 질환의 치료에 이용되는 등 사람에게 이로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일광화상, 광과민성 피부 질환, 광노화, 피부암 등의 비정상적인 반응을 초래하기도 한다. 글. 노영석 교수(한양대학교병원 피부과) / 그림. 안우정 자외선의 해악 A to Z 자외선에 의해 발생하는 대표적인 피부 반응은 홍반반응과 색소침착이다. 홍반반응은 자외선 노출 직후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즉시홍반반응과 자외선 노출이 지속될 경우에 나타나는 지연홍반반응이 있다. 색소침착은 자외선 노출 직후 주로 UVA에 의해서 일어나서 수분 내에 소실되는 즉시색소침착과 자외선 노출 3일 후에 주로 UVB에 의해서 일어나는 지연색소침착이 있다. 즉시색소침착의 경우에는 멜라닌의 산화와 멜라닌 과립의 기저층으로의 이동이 증가해 발생하지만, 지연색소침착의 경우에는 멜라닌 세포의 증가에 의해 발생한다. 일광화상은 강한 햇빛에 피부가 노출되면 노출 부위에 홍반과 가려움증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4~8시간 후에 나타나 24시간 후 최대에 이르며 3~5일 경과 후 색소침착을 남기고 서서히 소실된다. 중증일 때는 홍반 외에도 물집이 형성되고 통증이나 부종이 동반되기도 하며 일주일 이상 고생한다. 손상된 피부는 자외선 노출 10~14일 후 아래쪽에 새로운 피부가 재생되면서 박리되어 떨어져 나간다. 하지만 일단 검게 탄 피부가 원래의 피부색으로 되돌아가기까지는 수개월이 필요하다. 광과민성 피부 질환은 광선 자체가 원인이거나 광선이 질병의 발생에 관여하는 경우를 말한다. 원발성, 외부의 화학 물질, 유전 및 대사성, 광선에 의한 기존 질환 악화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주로 광선 노출 부위에 다양한 피부 병변이 관찰된다. 광노화란 자외선, 주로 UVB에 의해 피부 노화의 자연적인 과정이 촉진되는 것으로 만성적으로 과도하게 태양광선에 노출돼 발생한다. 진피 내의 교원섬유가 감소하고 피지 분비가 줄면서 피부가 건조해지며 모공이 넓어진다. 또 피부가 탄력을 잃고 거칠어지면서 잔주름과 깊은 주름이 생기고 불균일한 색소침착을 일으킨다. 강한 햇볕을 지속적으로 오래 쪼이는 것은 진피 내 세포의 DNA를 손상시킨다. 이것이 피부 종양으로 발전해 편평상피세포암, 기저세포암, 흑색종과 같은 악성 종양을 일으킬 수 있다.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피부암이 차지하는 비율이 낮지만 피부암 환자는 해마다 건강한대늘고 있는 추세다. 자외선 관리는 어린 시절부터 자외선의 파장은 200~400nm인데 이를 다시 파장에 따라 세분화하면, 320~400nm를 자외선A, 290~320nm를 자외선B, 200~290nm를 자외선C로 구분할 수 있다. 자외선A는 주로 진피에 작용해 광노화, 광발암 현상에 영향을 주며 노출 시 피부를 붉게 만들거나 검게 그을리게 한다. 자외선B는 주로 표피에 작용하며 급성 피부 반응으로 홍반, 부종, 동통 및 발열 등의 일광화상을 일으키고 종양에 대한 면역 감시 기능의 저하로 피부암을 유발한다. 오존층에 의해 흡수되는 가장 짧은 파장의 자외선C는 자외선B와 같이 피부의 DNA에 주로 작용해 광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피부암을 발생시킨다. 최근 환경오염 물질에 의한 오존층의 파괴로 인해 지표에 도달하는 자외선의 양, 특히 자외선C의 양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것이 피부암 발생률 증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성 자외선 노출에 대해 실험동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육안으로도 주름이 많아지고 피부가 처지는 것이 확인됐다. 또 종양 발생의 빈도가 높아지며 조직학적으로 피부가 두꺼워지고 콜라겐 섬유가 감소됐음이 보고됐다. 태양광선에 노출되는 부위와 노출되지 않는 부위에 각각 자외선을 쪼인 후 피부가 거칠어진 정도의 차이를 나이에 따라 비교한 외국의 연구를 보면, 소아에서 성인보다 그 차이가 적은데 이것은 소아가 성인보다 특별히 자외선에 민감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대상자 수는 적지만 인체 표피의 자외선 투과율에 관한 국내 연구에서도 나이에 따른 차이는 뚜렷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젊은 연령에서는 야외 활동 시간이 성인에 비해 훨씬 길어 평생 노출되는 일조량의 80%를 18세 이전에 받는다는 보고가 있다. 따라서 자외선에 의한 만성적인 손상은 평생 동안 자외선 노출이 축적되어 생기는 것임을 생각할 때 어린 시절부터의 자외선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사랑한대 2017년 9-10월호 이북 보기

2017-09 14

[오피니언][타임머신] 진사로의 언덕 오르던 87년의 기억 속으로

입학한 지 30년이 지난 이야기를 다시 더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치 어제처럼 가깝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미러 없는 인생은 질주의 피로감을 쉽게 느낀다. 가끔은 뒤를 돌아볼 줄 알아야 건강하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87년을 회상하는 시간은 내 마음속에 새로운 에너지를 솟구치게 하는 작은 축제인 듯싶다. 축제를 즐기러 가는 기분으로 그 시절의 행당동과 사근동을 다시 걸어본다. 한기수((주)필옵틱스 대표·물리학과 87) 동문 ▲ 한기수((주)필옵틱스 대표·물리학과 87) 동문 등산을 하는 거야? 등교를 하는 거야? 나는 부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한양대를 등하교하기에는 참 먼 거리였다. 한양대는 부천과 가까운 서울 서쪽도 아니고, 저기 동쪽 끝에 붙어 있지 않은가. 전철도 한 번에 가지 않는다. 1호선을 타고 사람들이 북적대는 신도림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탄다. 당시에는 지하철 노선이 네 개뿐이었다. 그래서 가는 길도 단순했다. 지방이라고 얘기하기도 애매한 부천에서 다니려면 두 시간 이상의 등교 시간을 각오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자취와 하숙을 선택했다. 그러나 학교와 가깝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우리의 모교 한양대는 참으로 높은 곳에서 우리를 내려보고 있었다. 강의 시간에 늦을 것 같으면 당연히 뛰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 높은 한양산(?)을 뛰어올라야 했다. 겨우 강의실에 도착하면 땀이 범벅이 되어 숨 고르고 땀 식히느라 10여분은 교수님의 강의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덕분에 체력만큼은 그 어느 대학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지금 이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유지하는 것도 그 시절 모교의 언덕이 키워준 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가 공부했던 자연과학대는 두 곳으로 갈 수 있었다. 하나는 인문대 방향의 108계단과 또 하나는 사회대 방향의 계단. 두 계단 모두 만만치 않지만 인문대 쪽 계단은 도중에 한 번은 쉬어야 할 정도로 힘든 구간이다. 이 구간을 오르는 여대생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 87년 당시의 자연대 건물 시국보다 더 어수선했던 신입생 시절 87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격동의 시기였다. 그러나 신입생에게 동문시국은 그냥 흐르는 물이었다. 그 물에 멋모르고 발을 담그는 사람이 있었고, 그 물을 피해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신입생은 그 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수선했다. 아니 공부에 시달렸던 고교 시절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소위 말하는 대학의 낭만을 만끽하고 싶어 했다. 지금은 사라진 사범대 앞 잔디밭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심지어 진달래 지짐을 해먹는 친구도 있었다. 1학년 1학기는 캠퍼스 안팎을 탐방하는 시기였다. 대출 목록을 작성하는 중앙도서관도 새로웠고, 88서울올림픽 배구 경기장으로 활용되는 체육관도 신기했다. 축제 시기에는 노천극장에서 종종 공연이 열렸다. 안치환, 신형원 등 가수들의 공연을 본 기억이 난다. 학교 밖은 놀거리가 더 풍부했다. 돈 없는 자취생이었지만 당구장에서 짜장면 내기를 했고, ‘이모네’에서 선배들과 젓가락을 두드리며 술도 마셨다. 그 나이 또래들이 그렇듯 싸고 맛있는 안주는 순대와 떡볶이였다. 이걸 먹을 수 있는 곳이 학교에서 나와 건널목을 건너면 나오는 먹자거리, 그 한가운데 있는 ‘한양뷔페’다. 이것저것 먹을 게 많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 ▲ 학교 정문에 개교 기념행사로 진행한 행당제전 홍보물이 세워져 있다. ▲ 진사로에 걸쳐져 있는 다양한 현수막들 학창 시절 키워드는 대자보, 동문회, MT 내 기억으로는 그 당시 교가가 두 가지 버전이었다. 하나는 집회를 나가는 학생들이 부르는 교가로 “행당언덕 넓은 터 남청색 진리 아래 모인 우리들~”로 시작하는 노래고, 또 하나는 우리 모교를 세운 김연준 설립자 님이 작곡한 “한양, 한양 무궁하도록~”이라고 부르는 노래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생각나는 세 가지 키워드는 대자보와 동문회 그리고 MT다. 대자보는 진사로를 걷다보면 늘 마주치는 대학 내 뉴스다. 나무 사이에 걸린 현수막에는 토익, 토플 강좌를 안내하는 내용이 넘쳐났고, 나무에는 동문회 모임을 알리는 포스터가 색깔별로 붙어 있었다. 교내 신문인 학보도 기억난다. 그 당시 학보는 학교 소식을 알기 위한 기본 목적보다는 다른 대학의 여대생들과 미팅한 후 편지를 주고받는 창구 역할을 했다. 신입생을 설레게 하는 것 중의 하나는 MT였다. MT는 대학의 낭만이었다. 주로 청량리역에서 모여 경춘선을 타고 대성리나 청평으로 갔다. 북한강변에서 캠프파이어를 하며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한양대 캠퍼스를 거닐며 신기했던 것 중의 하나는 연예인을 본다는 것이었다. 당시 인문대에는 연극영화학과가 있었는데 탤런트 박순애와 개그우먼 박미선, 강변가요제에서 상을 받은 꺽다리 이상은 등 TV에 출연하는 탤런트, 개그맨, 가수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동기들의 힘을 하나로! 87홈커밍데이 모교 한양대는 전통적으로 이공계가 강한 대학교다. 지금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모교 출신 선후배들의 활약상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한양대 출신들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맹활약 중이다.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후배들이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부분이다. 얼마 전 모교를 들른 적이 있다. 학교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2호선 한양대역 2번 출구를 나오면 바로 한양대 캠퍼스 안마당으로 연결된다. 전철역이 학교 안에 있는 것이다. 그만큼 학교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걸 의미한다. 자료를 복사하던 가게는 아직도 있었지만, 내가 즐겨 찾던 술집이나 당구장은 거의 없어지고 프랜차이즈 전문점 등으로 바뀌었다. 학교 건물도 87년도와 비교하니 엄청 늘었다. 낡은 건물들은 모두 새롭게 리모델링됐다. “참 좋아졌네”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정도였다. 78년 역사의 명문 사립대학다웠다. 기억은 단편적이다. 단편적인 기억은 추억이 된다. 그런데 그 추억이 모여 역사가 되는 법이다. 나는 올해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87학번 홈커밍데이 준비위원장을 맡았다. 홈커밍데이는 87학번 한양인을 위한 행사다. 이 행사는 우리가 다녔던 그 시절 한양의 추억과 기억을 다시 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특별한 기억을 함께한 87학번 동기들이 이 글을 통해 그 당시의 기억을 되살리고, 홈커밍데이를 통해 모범이 되는 학번으로 힘을 모았으면 한다. 이 자리를 빌려 87학번 홈커밍데이에 동기 분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활동을 부탁한다. 한양대의 역사는 78년의 한 페이지들을 채운 선후배들의 기억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87년도를 회상하며 나는 우리 모교의 힘을 다시 느끼고, 그 시절 나를 키웠던 에너지를 만난다. 한양대, 네가 있어 지금의 내가 있다. 사랑한대, 한양! 사랑한대 2017년 9-10월호 이북 보기

2017-08 16

[오피니언][건강한대] 당신의 장은 건강합니까?

장 점막이 손상되어 염증이 생기는 질병인 장염. 소장염, 대장염으로 구분 짓기도 하는 장염은 음식물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일반적으로 여름에 생긴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장염의 원인은 음식물 외에도 다양하며 계절에 상관없이 발병한다. 글. 이항락 교수(한양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 그림. 안우정 장염을 일으키는 다양한 원인 끼니를 자주 거르거나 과식과 폭식을 하고, 육류 등 고열량식을 자주 섭취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면 장 건강에 더욱 유의해야 한다. 장내 세균에 의해 부패 물질이 많이 발생해 장염, 과민성 대장염과 같은 장 질환으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장염의 원인은 감염성과 비감염성으로 나눌 수 있다. 감염에 의한 장염은 크게 세균성 장염과 바이러스성 장염으로 나뉜다. 세균성 장염은 대장균과 같은 일반 세균에 의해 장염이 발생하는 것이다. 장티푸스, 이질, 콜레라 등 치사율이 높은 장염도 세균성 장염에 속한다. 주로 위생 상태가 불량하기 쉬운 여름에 식중독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바이러스성 장염은 가장 흔한 장염이다. 여름보다는 늦가을에서 초봄에 걸쳐 유행한다. 특히 ‘가성 콜레라’라고 부르는 로타 바이러스는 바이러스성 장염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원인이다. 비감염성 장염은 너무 차거나 매운 음식을 많이 먹거나 폭음, 폭식, 약물에 대한 알레르기 등의 원인으로 발병한다. 장이 약한 사람이 과로한 경우 나타나기도 한다. 만성 장염의 원인은 다양하다. 급성 장염이 적기에 치료되지 않으면 만성 장염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처음부터 만성 장염으로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직장인에게 흔히 보이는 과민성 대장염은 장이 지나치게 민감해져 나타난다.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장의 운동 기능 이상, 스트레스와 같은 심리적 요인, 장염 등으로 인해 장의 감각이 과민해져 신체 조절 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인이 확실치 않아 완치가 힘들며 재발이 잘 되고 오랜 기간 불편을 초래한다. 설사, 복통, 구토, 발열 증상 감염성 장염에 걸리면 장 점막에 염증이 발생해 소화 흡수에 장애가 생긴다. 설사, 복통, 구토, 발열 등이 일어나고 하루에도 여러 번 설사를 하게 되며, 이로 인해 탈수증을 일으켜 전신 쇠약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복통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는 묵직한 통증이 가장 흔하다. 이렇게 시작해 뒤틀리는 듯이 심하게 아픈 통증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심하면 탈수로 인한 쇼크가 나타나기도 한다. 만성 장염은 급성 장염 증세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몇 개월 또는 몇 년간 증상이 계속되면서 배변이 불규칙해지고 지속적으로 설사를 하게 된다. 설사 대신 변비가 있기도 하며 때로 설사와 변비가 반복되는 경우도 있다. 복통은 어느 한 부위가 계속 건강한대아프기보다는 돌아가며 여러 부위에 무거운 통증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변을 보아도 시원치 않고 남아 있는 느낌이 들거나 장출혈로 인해 변에 피가 묻어나오기도 한다. 구토가 나거나 식욕 부진, 복부 팽만감, 소화 흡수 장애로 인해 영양 상태가 나빠져 빈혈이나 체중 감소를 동반하기도 한다. 대변에 피가 묻어 나오거나 잠에서 깰 정도의 심한 복통, 체중 감소와 같은 동반 증상이 있는 경우에는 다른 질환이 있는지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장염에 걸리지 않으려면 이렇게 균이나 바이러스를 통해 감염되는 급성 장염의 경우에는 음식의 청결 상태가 상당히 중요하다. 음식을 만들 때는 손을 청결히 하고 신선한 식재료를 선별해 구입하며 음식을 사 먹을 때는 위생 상태가 좋은 음식점을 선택한다. 너무 차갑거나 자극적인 음식은 장 건강에 특히 해롭다. 더욱이 여름철에는 장의 기력이 약해져 자극적인 음식을 조금만 섭취해도 장염에 걸릴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스트레스가 주원인인 만성 장염은 일단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장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만성 장염에 걸리기 쉬우므로 평소 배를 따뜻하게 하고 너무 차거나 맵거나 딱딱한 음식 등은 멀리하는 생활 습관이 필요하다. 무조건적인 지사제 사용은 금물 장염의 치료는 우선 환자를 안정시키고, 탈수 증세를 호전시키기 위해 수액을 보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설사 증세를 보인다고 임의로 지사제를 복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세균성 장염인 경우 원인균을 치료하지 않은 채 설사만 멈추게 하면 장 속의 독소가 제대로 나오지 못해 증상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균성 장염에 걸렸을 때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원인균에 맞는 항생제, 항균제 등 약물 치료를 한다. 비감염성 장염의 경우 복통의 원인이 되는 음식물을 제거하기 위해 하루 이틀 절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한 복통에는 진경제(근육의 경련을 가라앉히는 약)를 쓰기도 하며 설사를 멈추기 위해 지사제를 투여하고, 탈수가 있으면 수액을 보충해 준다. 약물 치료를 병행하면서 하루 이틀 수분만 섭취하는 것이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 그 후 식사는 유동식에서 시작해 반유동식, 연식, 경식 등으로 증세에 따라 점차 바꾸어 간다. 고지방식이나 생 채소, 자극성 음식물은 회복 후에도 한동안 금하는 것이 좋다. 사랑한대 2017년 7-8월호 이북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