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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 16

[오피니언][짧은 글 긴 이야기] 나의 마지막 여름 방학

추운 겨울보다는 더운 여름이 좋다. 차갑게 내리는 장맛비보다는 포근하게 내리는 함박눈이 좋다. 나에게 여름 방학은 '좋아요'와 '싫어요' 그 사이였다. 글. 한지연(신문방송학과 14) / 그림. 안우정 방학마다 찾은 부산, 내 고향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 이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화려한 유혹 속에서 웃고 있지만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해.’ 기숙사에서 혼자 로이킴의 노래 ‘서울 이곳은’의 첫 소절을 듣고는,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울음이 터진 날을 기억한다. 20년을 부산의 어느 바다 앞에 살던 아이의 안산 생활도 어느덧 4년 차에 접어들었다. 부산을 벗어나면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 그곳을 너무나도 떠나고 싶었다. 그렇게 스물세 살이 되었다.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타지 생활. 힘들어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결국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똑같다는 것을 부산을 떠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왜 그렇게 그곳을 도망가고, 벗어나려 했나 싶어서 혼자 펑펑 울기도 했다. 그래서 방학이 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리나케 부산으로 향했다. 엄마, 아빠, 동생들이 그리웠고 친구들과 바다가 보고 싶어서…. 하지만 방학에도 학교 근처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첫 번째 여름 방학은 학회, 두 번째는 학보사, 세 번째는 대외 활동이 나를 기다렸지만 나는 늘 부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이 있을 때마다 무궁화호를 타고 왕복 10시간의 통학을 감수해야만 했다. 방학 중에 학보사 기획 회의가 끝나고 다른 기자들이 지하철역으로 향할 때 나는 기차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들 출발한 지 1시간도 채 안 되어 집에 도착할 때 나는 긴긴 시간을 무궁화호에서 보내고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그런 나를 미련하게 바라봤던 서울 사람들. 그런데도 방학마다 내가 집으로 향했던 것은 지치고 힘들었던 안산에서의 생활을 접어두고 그리운 가족의 품으로, 부산으로 잠시 찾아와 쉴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회는 없다. 부산으로 갈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방학 그 ‘끝’에는 내가 돌아가야만 하는 곳이 있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좋아요’와 ‘싫어요’ 딱 그 사이였다. 다시, 로이킴의 노래 한 소절. ‘하지만 언젠가는 돌아올 거야. 휴식이란 그런 거니까.’ 나에게 지금까지의 여름 방학은 그런 의미였다. 4학년 방학이 갖는 의미 방학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 기간 수업을 쉬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또 다른 수업에 뛰어들기 위해, 스스로의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종강하면 마지막 여름 방학이겠구나.” 종강을 앞둔 4학년 학생들에게 교수님이 던지신 말씀. 그 한마디에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4학년’이 주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당연히 부산행이던 내 여름 방학이 이번은 조금 다를 것 같다. 다들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 같아서 나도 뭔가 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스스로를 짓눌렀다. 새내기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4학년이라는 현실이 밉고 싫기만 하다. 난 아직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내가 할 수 있는 ‘하계 인턴’과 ‘하반기 인턴’ 등 할 일을 찾느라 손도 마음도 바쁘다. 수업이 끝나면 적막만이 기다리는 자취방으로 돌아와 노트북 앞에 쭈그리고 앉는다. 나 대신 ‘나’를 말해줄 이력서와 자기소개방학서를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만들어진 자기소개서는 곧 좋은 소식을 가져올 것처럼 당차게 내 손을 떠나버리지만 며칠 뒤 “죄송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돌아온다. 바다와 가족을 만나러 가기 위해 방학을 기다리는 내가 아닌, 방학에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좌절하는 4학년의 마지막 여름 방학 앞에 서 있다. “4학년인데 이번 방학에는 뭐할 거야?” 요즘 나에게 안부 인사처럼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도 많고, 나 스스로 묻기도 하는 이 질문. 대체 4학년의 방학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특별한 경험과 의미 있는 도전을 해야 할 것처럼 ‘마지막’이라는 수식어가 거창하게 다가온다. 여전히 부산이 그립고 바다가 그리워서 여름 방학이 오길 기다리다가도 마지막 여름 방학이 무섭고… 어디로 훌쩍 떠나버릴까 하다가도 통장 잔고를 보면 속상하고… 그냥 모든 것이 복잡하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볼 사람도 없고, 정답도 없어서 두렵고 불안하기만 하다. 2017년 마지막 여름 방학, 그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뜨거운 햇살과 차갑게 내리는 장맛비 속의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어디에 있을지도 아직은 모른다. 그래도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나를 성장시켜주고 또 다른 나를 향한 발걸음이라고 생각해야지. 그저 스물세 살 여름 방학의 끝엔 마음이 넓어지고 자유로워진 나를 만나고 싶다는 다짐만 반복하며 나의 마지막 여름 방학을 기다린다. ‘좋아요’와 ‘싫어요’ 그 사이 어중간한 위치에서 다가오고 있는 방학을. 사랑한대 2017년 7-8월호 이북 보기

2013-03 20

[오피니언]우리는 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가?

▲ 글_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양대 신문학과 졸. 뉴욕주립대 커뮤니케이션 석사, 켄트주립대 커뮤니케이션 박사 학위취득했다. 기획조정처부처장, 언론정보대학장, 언론중재위원, <커뮤니케이션이론> 편집장, 한국언론학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언론정보대학원장, 창의성과 인터랙션연구소장, 방송통신위원회 미디어다양성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 5월에 필자는 <나를 좋아하게 하는 커뮤니케이션! 호감을 얻는 소통의 지혜>라는 대중서를 펴냈다. ‘나는 커뮤니케이션 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소통의 가치와 사람들 간의 관계가 지니는 가치에 대해 높아진 사람들의 인식에 동참하고 싶어서였다. 아전인수의 주장이 난무하는 미디어만 있고 사람은 없는 커뮤니케이션은 즐거운 공동체 형성과는 거리가 먼 공허한 허울이라는 자각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행복하려면 돈과 권력보다 자신의 정체성에 충실하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아야 하며, 자기존재감과 인간관계의 형성, 유지, 발전, 해체의 핵심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지혜로의 귀의였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정호승의 ‘수선화에게’ 우리는 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가?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묻는 이 질문에 선뜻 뾰족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 말을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거나 궁금해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에 공감한다면 외로움을 느끼고 있고, 애인이나 친구에게 말을 건네고 함께 있고 싶은 거다. ‘산 그림자도 마을로 내려오듯이’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지듯이’ 말과 이야기로 누군가에게 퍼져가고 싶음이다. 외로움을 달랠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것이다. “…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 쪽에 가두어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 나온다. 우리는 분수가 터지고 밝은 햇빛 아래 뭇 꽃이 피고 영웅과 신들의 동상으로 치장된 광장에서 바다처럼 우람찬 합창에 한몫 끼기를 원하며 그와 똑같은 진실로 개인의 일기장과 저녁에 벗어놓은 채 새벽에 잊고 간 애인의 장갑이 얹힌 침대에 걸터앉아서 광장을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을 원한다…” (최인훈의 <광장>, 1961년판 서문) 사람은 밀실과 광장을 왕래하는 존재라는 이 서문은 커뮤니케이션하는 이유를 또 다른 측면에서 보여준다. 자신만의 공간인 밀실에서 인간은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아를 위로하고 자유와 꿈을 가꾼다. 자아와 자유와 꿈이 팽창할수록 인간은 밀실의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궁금해진다. 수군거리는 광장의 이야기에 합세하려고 한다. 밀실에서 가꾼 자아는 자기표현을 통해 타인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광장의 이야기, 세상의 이야기가 된다. 커뮤니케이션은 밀실에서 가꾼 도도한 개인성을 사회적 동물로서 광장의 타인들과 어울리게 한다. 밀실과 광장을 융합하는 징검다리다. 우리가 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가에 대한 답은 하나일 수 없다. 천차만별이다. 그렇지만 커뮤니케이션 행위가 인간의 인식욕구(Need to know)와 공시욕구(need to inform)에 뿌리를 두고 있는 건 사실일 것이다. 인식욕구가 자신의 외부세계, 즉 다른 인간들과 세상에 대하여 알고 싶어 한다면, 공시욕구는 자신의 내부세계를 외부세계의 타인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욕구충족의 수단으로 커뮤니케이션을 보는 것은 오래된 견해이다.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한다면 욕구를 해소하면서 인간사회가 카오스(혼란)가 아닌 코스모스(조화)의 세계로 이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제대로 말하고 남의 말을 듣고 대화하고 토론하는 커뮤니케이션은 오래전부터 교육의 핵심 대상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체험하고 있듯이 말은 코스모스만이 아니라 카오스의 원인이기도 하다.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찾아가야 할 이유이다. 타인과 고도의 지적인 행위로 교류하는 인간 세계에 수학 공식 같은 처방전은 불가능하다. 중요한 점은 설명, 주장, 설득의 머리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고 배려, 공감, 감동이 있는 소통의 커뮤니케이션이다. 머리와 가슴이 서로 동행하고 마침내 일치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 걸리는 여행은 머리에서 출발하여 가슴으로 오는 여행이라는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리라. 어떻게 하면 머리와 가슴의 거리를 줄이고 또 줄여갈 수 있을까? 갈 길은 멀고 서산에 해는 기울고 있지만 그 거리를 줄이는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지혜를 찾아 헤매려고 한다. 이 책은 인간은 공유하는 만큼 이해하고 존재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동물, 호모 커뮤니쿠스(Homo Communicus)라는 점을 대변하는 11개 핵심 커뮤니케이션 개념과 사례를 필자가 선택하여 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