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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 19

[오피니언][짧은 글 긴 이야기] 한양대에서 출발한 학문적 여정

1997년 봄이 오기 직전 매섭게 차가운 바람이 불던 어느 날, 나는 경기도 용인의 놀이공원으로 가는 차에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다른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정말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놀이공원에 가는 줄만 알았다. 글. 강성훈 교수(정책과학대학 정책학과) / 그림. 안우정 20여 년 만에 다시 선 교정 용인에 도착했을 때 차는 갑자기 방향 감각을 잃은 듯 이상한 시골길로 향했다. 저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간판에는 기숙학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부모님은 당시 내가 합격한 대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1년 더 공부하길 원하셨다. 나는 부모님의 기대대로 순순히 기숙학원에 들어갔다. 그때 부모님은 나에게 긴 편지와 함께 “넌 할 수 있어”라는 말을 하시고 떠났다. 처음에는 그 말이 진부하게 들렸지만 이상하게도 큰 동기부여가 됐다. 이후 1년 동안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1998년 초 어느 눈 내리는 추운 겨울날, 나는 한양대 운동장 한편에서 합격자 명단에 적혀 있는 내 이름을 보면서 인생의 첫 번째 마라톤을 무사히 완주했다고 생각했다.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셨던 부모님과 할머니의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가족의 사랑을 받으면서 한양인(경제금융학부 98)이 됐다. 2017년 9월 가을이 시작될 무렵, 나는 학생이 아닌 교수로 다시 한양대에 들어섰다. 한양인으로서 첫발을 내딛은 지 거의 20년 만이다. 처음 교단에 섰을 때 느낌이 묘했다. 어린 학생들 틈 속에서 내가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질문과 토론에 적극적인 학생들 세월이 지났어도 한양대의 언덕이 어디 가질 않듯 새내기는 새내기고 고학년은 고학년이었다. 새내기와 고학년의 큰 차이는 취업에 대한 무게일 것이다. 그 무게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요즘은 더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의 자세가 남다르게 느껴진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질문에 적극적으로 답하거나 토론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수업 시간에 자신 있게 의견을 내고, 복도에서 친구들과 함께 토론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아빠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이 질문과 토론이었다.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수업 시간에 질문하거나 토론할 때 내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 번지점프를 하는 것보다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모르는 것에 대해 질문하는 용기를 가지게 됐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이면서 내 의견을 다른 사람과 자신 있게 나눌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무척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수업 시간에 자신 있게 질문하고 때로는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되면서 수업을 준비하는 나의 자세도 바뀔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학생과의 상호 작용을 통한 수업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얼마 전 수업 시간에 간단한 경매 게임을 한 적이 있다. 이 게임은 승자의 불행(또는 승자의 저주)에 관한 게임이었다. 나에게는 첫 시도였는데,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줘서 무척 고마웠다. 누군가의 진로를 바꾸는 수업 수업은 한 학생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한 수업을 듣고 진로를 결정했다. 석사학위 지도교수인 경제금융학부 홍종호 교수님의 학부 수업을 들으며 경제학에 흥미를 가지게 됐고, 이것이 유학을 결정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이 수업을 통해 내가 경제학에 흥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다소 어려울 수 있었던 경제학 개념을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와 연결해 설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수업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경제학이라는 학문에 큰 매력을 느낀 것이다. 홍종호 교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나도 내 수업에서 경제학 개념을 현실적인 이슈와 문제를 활용해 설명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학생들이 살아가면서 세상을 이해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데 수업 시간에 배운 경제학 개념이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연구는 교수 생활의 엔진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수업이라는 또 다른 엔진과 연결돼 있다. 수많은 새로운 연구가 매년 수행되고 있고 우리의 지식은 쌓여간다. 만약 연구가 멈춘다면 수업 내용은 과거에만 머물게 될 수 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 중 하나는 그들의 연구가 매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수업과 외부 활동으로 바쁜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한 해에도 여러 편의 연구가 끊임없이 SSCI급 저널에 게재된다. 교수들의 연구 성과가 수업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양대에서 출발한 나의 학문적 여정은 이제 새로운 장을 맞이했다. 모든 것이 감사하고 새롭고 설렌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수업과 연구라는 두 엔진을 열심히 가동해서 내가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도와주신 훌륭한 교수님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특히 석사학위 지도교수이신 홍종호 교수님과 박사학위 지도교수이신 마크 스키드모어(Mark Skidmore) 교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이 내 제자들에게도 잘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한대 2017년 11-12월호 이북 보기 ;

2017-05 30

[오피니언][짧은 글 긴 이야기] 다르게 생각하라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엄청난 발전에 따라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학생들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겨준다. 이 시대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은 복합적이기 때문에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는 과학적 사고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 시대의 변화가 너무 빠르고, 발전의 방향이 급진적이기 때문에 과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예측은 빗나가게 된다. 그래서 과거가 아닌 미래에 집중함으로써 문제를 미리 예측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에 파괴적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이다. 글. 한승현(3D Maker·독어독문학과 15 한지희 학생 학부모) / 그림. 안우정 미래에 집중한 문제 해결 방법 디자인 사고의 핵심은 ‘인간 중심’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고를 하기 전, 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그 사람의 문제를 알기 위해서 공감하고,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숨어 있는 문제를 찾아야 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추측하지 말고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를 찾은 후에는 문제를 정의한다. 문제 정의가 가장 중요한 단계다. 좋은 문제 정의는 좋은 아이디어 도출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문제를 정의할 때는 ‘진짜 문제인가?’, ‘해결할 가치가 있는 문제인가?’, ‘영감을 주는 문제인가?’의 세 가지 원칙을 사용한다. 이를 적용한 문제 정의의 결과물이 관점 서술문인데, ‘누가? 어떤 이유로 ~한다. ~하는 방법은 없을까?’의 형식으로 작성한다. 아이디어 도출은 문제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때는 자유분방하게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 상대방의 의견에 대해서는 늘 ‘Yes’라고 답하며, 그 의견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추가해야 한다. 아이디어를 많이 내야 보석 같은 좋은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다. 실례로 디자인스쿨에서는 5분당 100개의 아이디어를 낸다고 한다. 도출된 아이디어 중 최선의 아이디어는 시제품으로 만들어지는데, 아이디어를 테스트하기 위해서다. 시제품에는 스케치, 시나리오, 입체 제작물이 있다. 시제품은 주변에 있는 재료로 가장 빠르고, 수정하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 시제품을 대상들에게 평가받고, 피드백을 통해 디자인 씽킹 과정의 문제점을 파악한다. 이러한 프로세스의 순환을 통해 최선의 아이디어를 찾는 것이 바로 디자인 씽킹이다. 즉, 디자인 씽킹은 답을 찾으려고 하는 사고가 아니라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최선의 아이디어를 찾는 과정 디자인 씽킹은 ‘완벽한 것은 없으며, 모든 것에 문제가 존재한다’라는 인식에서 시작된다. 이는 한국의 사고방식과는 사뭇 다르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없으면 해결도 없기 때문에 모든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거나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또한 디자인 씽킹에는 부정적인 사고가 없다. 문제가 있다고 한 번 인식하면 그 문제에는 반드시 해결책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실제로 해결책이 있다. 디자인 씽킹에서는 인간이 핵심이다. ‘누구를 위하여 디자인하는가?’는 디자인 씽킹에서 꼭 필요한 질문이다.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깊이 알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평소에 나와 주변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관찰을 통해서 나와 이웃의 불편한 점을 찾고 기록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디자인 씽킹에서 이루어지는 극단적 협력에서는 타 분야 전문가와 의 협력이 중요하다. 디자인 씽킹 집단은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디어 도출 과정에서 상대방의 의견에 ‘Yes’라고 대답해야 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나만의 의견을 고집하면 필연적으로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로 베이스(zero-base)에서 시작해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고 소화한 후 내 아이디어를 추가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면 그것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독특한 아이디어가 된다. 이 구조에서는 내가 낸 아이디어가 부정되지 않고, 그래서 ‘극단적인 협력’이 일어난다.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협력하기 위해서는 서로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필요한데, 여기서 ‘시각화(visualization)’가 사용된다. 시각화에서는 문자와 이미지가 결합된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사용한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훌륭한 방법이지만,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만났을 때 서로의 간극을 줄이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그런 면에서 시각화는 문자에 이미지를 더하는 방식으로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서로의 의견을 이해하기 쉽게 만든다. 또한 시각화 과정을 거칠 때 단어를 이미지화하면서 창의적 발상이 일어난다. 디자인 씽킹의 프로세스 중 ‘공감’에서 수집한 많은 자료를 정리하는 데에도 시각화는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이처럼 시각화는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기 때문에 단어의 핵심을 이미지화하기 위한 연습에 습관을 들여야 한다. 사랑한대 2017년 5-6월호 이북 보기

2017-04 04

[오피니언][짧은 글 긴 이야기] 캠퍼스와 함께한 나의 성장과 발전

한양플라자 3층 학생 식당이 리모델링됐다. 아무래도 많이 낡긴 했었다. 다 떨어져가는 벽지와 오래된 의자, 탁자들도 칙칙한 분위기에 한몫했지만 이래저래 다른 학생 식당들이나 시설들이 세련된 모습으로 변하면서 상대적으로 누추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1월과 2월 두 달 동안의 공사를 거쳐 다시 문을 열었는데, 꽤나 그럴싸한 모습이다. 글. 양재영(사회학과 11) / 그림. 안우정 6년 전 교정을 떠올리며 ‘여기도 바뀌었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처음 입학했던 2011년의 교정과 지금의 그것은 6년 터울일 뿐인데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외형적으로 많이 바뀌었다. 노천극장 앞의 세련된 미래자동차공학관, 다듬어진 한양둘레길, 곳곳에 새로 생긴 카페들은 내 신입생 시절에는 없던 것들이다. 내부적으로는 어떤가. 불과 6년 전이지만 그 시절 생활과학대는 온수는커녕 한 층에 한 개의 화장실도 없었다고 한다. 공간이 너무 부족해 화장실로 쓰던 공간을 과방으로 개조해서 사용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또한 이전에는 없었던 수많은 단체들이 생겨났으며 시스템도 많이 개선됐다. 그렇게 묵묵히 내가 몸담은 학교의 변화를 천천히 떠올려보고 있자니 문득 나의 성장과 변화는 나의 모교와 함께 자란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대를 시작하며 한양대에 입학했고 그 이후 지금까지 보냈던 많은 시간들이 학교와 관련된 것이었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제 4학년, 취업 준비에 매달려 하루하루 나 자신의 발전에만 매몰되어 있었기에 나에게는 이런 생각들이 꽤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항상 나 자신의 발전을 위해 하루하루 찾던 이 공간도 나와 함께 변화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떤 씨앗도 혼자 발아할 수 없다 취업 준비생이란 타이틀이 이제 나를 부른다고 느낄 즈음의 학생들의 시야란 상당히 좁아지기 마련이다. 남을 배려할 마음의 여유를 챙기기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이 너무나 각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는 이기적인 마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어떤 씨앗도 자기 혼자의 힘으로 발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씨앗이 온전히 나무로 자라기 위해서는 자신을 품어줄 비옥한 토양과 적절한 영양분 그리고 옆에서 성장을 함께할 다른 씨앗이 필요한 법이다. 이 교정은 나와 많은 것을 함께하는 비옥한 토양 같은 것이다. 때론 전문적인 지식을 쌓아주는 선생님으로, 주린 배를 채워주는 식당으로, 흥에 겨운 밤을 보내며 아침을 지새웠던 친구로 함께해왔다. 항상 나를 품어주고 길러줬다는 뜻이다. 또한 나와 함께 자랄 많은 친구들을 만나게 해준 것도 우리 학교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공부하고 고충을 토로할 수 있는 인연들을 만난 것도 바로 학교가 우리에게 제공해준 것들이다. 나의 뿌리를 기억하는 일 추수의 때, 나라는 사람이 황금빛으로 익을 때 나는 이 캠퍼스를 떠날 것이다. 사회에서 원하는 인재로 알맞게 익어서 어딘가에서 요긴하게 사용될 터이다. 그때가 되면 천천히 변화하는 교정의 모습을 더 이상 이 자리에서 지켜볼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학교에 영원히 남을 수는 없을지라도 중요한 것은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나의 뿌리를 기억하는 일이다. 내가 성장했던 고향을 떠올리고 나와 함께 공부한 친구들을 기억하며 사는 것은 곧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 자리에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감사를 갖는 것이다. 비록 아직은 미래에 대한 걱정에 잠 못 이루는 취업 준비생일지라도, 이런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나와 함께 성장하는 많은 존재들을 떠올리며 나는 오늘도 도서관으로 향한다. 사랑한대 2017년 3-4월호 이북 보기

2017-01 19

[오피니언][짧은 글 긴 이야기] 2017년, 내 인생의 선물 같은 한 해가 되길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한 해를 열심히 보낸 나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 1년이 지나 2017년을 마무리하며, 후회 없는 한 해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길 바란다. 글. 이주비(한국언어문학과 14) / 그림. 안우정 인생 23년 차가 된 소감 스물세 살,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나이다. 스물세 살은 아직도 자신에 대해 잘 모를 나이다. 스물세 살은 미숙한 어른이다. 가끔은 자신이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기도 하는. 스물세 살은 그런 나이다. 2017년, 난 스물세 살이 됐다. 대학에 들어온 지 4년째다. 학교에 입학해서 정신없이 놀다 보니 1년이 지났고, 적응 좀 했다 싶으니 2년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렇게 3년이 지나 있었다. 사회에서 스물세 살은 풋풋한 대학생이지만, 학교 안에서는 늙은이 취급받기 십상이다. 안팎의 온도차가 이렇게 심하니 어서 빨리 취업을 해서 학교를 떠나는 게 답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4학년이 된 이상 이제 취업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까지는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따뜻하게 살았지만 1년 뒤에는 냉랭한 사회로 내몰리게 된다. 그때를 대비해 준비해야 한다. 누군가는 지금도 늦었으니 당장 목표를 정해서 달려가라고 내게 말한다. 하지만 솔직히 난 아직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또 다른 누군가는 바로 그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 나이라면, 그 학년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진로를 확실하게 정해뒀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반박하고 싶다. 과연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고. 당신의 인생은 그렇게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느냐고. 벌써부터 주변의 지대한 관심이 나를 지치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유익함 2016년의 나는 정신없이 달려왔다. 아니, 2016년만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나는 내내 옆에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는지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달리기에만 급급했다. 그렇기에 나를 알아간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또한 방학을 쉬기만 하면서 지낸 게 손에 꼽을 정도다. 초등학생 때는 제외하더라도 중·고등학생 때는 공부하느라, 대학교 들어와서는 아르바이트하고 학원에 다니느라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그래도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방학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대학교1학년 겨울방학을 꼽고 싶다. 그때 특별한 일을 한 건 아니다. 말 그대로, 정말 하는 게 없었다. 책을 읽고, 보고 싶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글을 쓰고, 잠도 자고 싶은 만큼 실컷 잤다. 그럼에도 왜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묻는다면, 그 시간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게으름을 피우다 보면 온갖 잡념들이 날 사로잡았고, 내 존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태한 생활이 반복되면서 자기혐오의 감정도 들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또한 다시는 없을 유익한 시간이었다. 나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언제 다시 주어질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때를 떠올리며 나는 다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1월을 계획 중이다. 제대로 달리기 위해선 가끔은 뒹굴며 쉬는 시간도 필요하다. 이번 겨울도 그때의 겨울처럼 보내고 싶다. 그리고 난 같은 이유로 또 다른 계획을 세우게 됐다. 재충전, 그리고 다시 시작 난 느리더라도 신중히 결정한 나만의 길을 가길 원한다. 성급히 내린 결정을 믿지 못해서이기도 하고,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올해는 휴학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건 순전히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은 학교와 집만을 오가는 틀에 박힌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 속에선 제한된 경험만 가능했다. 대학 생활 3년은 이런 나에게 그전의 19년간 배운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특히 대학 생활은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나를 알아나가는 데 도움을 줬다. 그렇지만 학교에 다니면서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하기란 너무 벅찬 일이었고, 난 내가 원하는 것들만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 휴학을 결정했다. 그러나 세상만사 내 뜻대로만 되지 않는 법. 누구보다 먼저 주위의 사람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설령 그들이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더라도 무언의 압박을 주기도 했다. 아니면 나 스스로 휴학하는 이유가 타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해 뜨끔한 것일 수도 있다. 사실 그렇다고 해서 내게 특별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내 마음대로 살아보는 것. 이게 다였다. 처음엔 도저히 이해 못 하시던 부모님도 나의 거듭된 주장에 결국 백기를 드셨다. 어찌 됐건 올해 나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됐다. 평생 나에게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것에 구속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아볼 기회는 이번 한 번뿐인 것이다. 2017년을 어떻게 채워 나갈지 기대된다.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